지중해 건너는 사람들을
운 나쁜 상황이라고 말해선 '곤란'
그것은 권리 박탈당한 비정상 간주
지속적 삶의 터전 떠나게 만드는
지금의 체제 눈감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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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정글'(조 머피·조 로버트슨 작, 김혜리 연출, 5월22~2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프랑스 칼레의 난민캠프가 배경이다. 2015년 칼레에는 죽음의 바다 지중해를 건너 도착한 사람들이 임시 거주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리비아, 수단,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출발했다. 국경을 넘으면서 형제를 잃었다. 사하라 사막을 지나는 동안 자매를 잃었다. 지중해를 건너면서 가족을 잃었다.

칼레는 도착지가 아니었다. 장벽을 넘을 때마다 동료와 혈육을 묻어야 했던 그들이 도착한 칼레는 통과해야 하는 또 다른 관문에 불과했다. 영국으로 이어지는 터널의 입구 앞에서 그들은 막혔다. "갈 수 있는 곳이 없잖아." 그렇게 칼레는 난민캠프로 변해갔다. 2015년 3월부터 2016년 여름이 지날 무렵까지 칼레에는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칼레에 도착한 사람들이 들어야 했던 말은 환대의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도착이 전해지자마자, 그 도착은 정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그들에게 날아왔다. 유럽연합의 난민수용 조치보다 빠르게 그들에게 날아온 것은 "우리가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지를 결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었다. 헝가리를 비롯해서 유럽의 곳곳에서 그들의 도착을 미리 막고 나선 것이다. 혐오와 인종주의의 담론 앞에서 그들은 삶의 터전만 잃은 것이 아니라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다.

한나 아렌트는 "더 이상 어느 정치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두고 그들이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단지 법 앞에서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내몰렸다는 의미이다. 공동체에서 축출당한 사람들은 몇몇 권리를 상실한 것이 아니라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로 인해 그들은 법의 경계 바깥으로 추방당해 무권리의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법의 바깥은 어디일까. 그런 곳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아렌트는 무권리 상태의 비참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난민이 거주권이 없는 사람임을 생각할 때 그들이 누리는 이동의 자유는 사냥철에 토끼가 갖는 자유와 비슷하다"고. 토끼는 법 앞에서 불평등한 것이 아니다. 법의 바깥에 있다. 자유롭게. 토끼는 어떤 권리를 덜 가진 불평등으로 인해 부자유한 것이 아니다. 토끼는 권리를 덜 가진 것이 아니라 아예 권리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연극 '정글'에서 법의 바깥을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죽음의 바다 지중해에서 살아남은 목소리를 전할 때다. "지중해에 대해 뭘 알아요?" 비용에 따라 타는 배가 다르다. 배에서도 값에 따라 있는 곳이 다르다. 어디에나 밑바닥이 있다. "난 옮겨졌고…, 옮겨졌고…, 옮겨졌고…, 물건처럼." 포개진 채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을 물건에 비유해서 실감이 덜하다. 과거 아프리카를 떠난 노예선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난민은 여러 번 죽어요." 무권리의 상태로, 무권리의 상태라서. 생존하는 순간순간마다 다른 죽음을 만나는 연속이다.

우리에게 지중해는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그 거리의 감각에 따라 물건이나 토끼로 보이거나 아니면 사람으로 보일 테다. 우리가 지중해를 건너는 사람에게 운이 나쁜 예외적 상황에 내몰려서 그렇다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사냥철을 맞이한 운 나쁜 토끼를 가여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예외적인 비정상 상태로 간주함으로써 삶의 터전을 지속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지금의 체제를 눈감도록 한다.

칼레에는 죽음만 있지 않았다. 연극 '정글'에서 빛나는 한 장면은 무권리의 상태에 놓인 그들이 연대의 힘을 보여줄 때였다. 캠프 철거가 시작되자 적대국에서 온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대응하기로 합의하는 과정이 그렇다. 이 장면은 1998년 뉴욕 택시파업을 연상케 한다. 파키스탄과 인도가 핵무기 실험을 시행한 1주일 후에 뉴욕에서는 파키스탄과 인도의 운전노동자가 연대의 공동행동을 한 것이다. 국경의 분리선을 넘어.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