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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인)을 뜻하는 어나니머스(anonymous)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국제해커집단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웹사이트 포챈(4chan)에 게시물을 올려 존재를 알렸다. 신분을 철저하게 숨기는 점조직으로 운영되며, 회원은 3천명 정도로 추정된다. 사리사욕을 챙기려 범죄를 일삼는 블랙 해커(black hacker)와 달리 표현의 자유, 사회 정의를 추구하며 부패와 폭력에 저항한다. 2010년 미국 정부 외교 기밀문서를 폭로한 위키리크스를 지지하는 선언을 해 주목받았다.

정치학자들은 2011년 아랍 민주화운동의 성공 요인으로 어나니머스의 역할에 주목한다. 아랍 시위대를 지지하는 선언을 했을 뿐 아니라 튀니지, 이집트 등 독재국가 정부 사이트를 공격해 마비시켰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해 어나니머스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100인'에 선정했다.

회원들은 '가이 포스크'를 쓰고 등장한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2005년 제작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가면이다. 전체주의나 독재 정부의 국민 통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홍콩시위대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어나니머스가 가상화폐를 쥐고 흔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경고장을 던졌다. '머스크에게 보내는 어나니머스 메시지'란 영상에서 "당신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하는 놀이 때문에 여러 삶이 파괴돼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남아공 광산에서 훔친 자산 속에서 태어난 당신은 (노동계층의 힘든 사정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머스크 아버지가 에메랄드 광산을 소유한 사실을 빗댄 거다.

머스크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가상화폐 시장을 들쑤시고 있다. 막강한 영향력으로 비트코인 가격을 올린 뒤 사익을 챙겼다는 비판을 받는다. 어나니머스는 "당신은 이 안에서 당신이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번엔 임자를 만났다"며 "기대하라"고 했다.

머스크는 반응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을듯하다. 어나니머스가 이슬람 무장단체 IS도 집요하게 공격한 이력을 모를 리 없다. 전황(戰況)은 머스크에게 절대 불리해 보인다. 혼자서 발가벗고 누군지도 모르는 적들과 싸워야 한다. 즉각 손들고 항복하는 게 괴멸을 피할 유일한 탈출구일 수 있다. 천재 CEO가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