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행동경제학은 합리성 비판
서로 이익인데도 수용을 거부하 듯
합리적 정책추진도 결과예측 상반
복잡다기 인간 사전적 추론 어려워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근대경제학이 상정하는 것처럼 합리적인 존재일까?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세일기간에 평소 갖고 싶은 물건을 사거나 흉작으로 가격이 오른 배추를 대신하여 무로 김치를 담그는 것은 분명 합리적인 결정이다. 반면 당첨 기대금액이 지불액보다 낮은 복권을 사거나 필요하지도 않은 비싼 물건을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사는 행위는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최근에는 경제학 내부에서도 인간의 합리성을 비판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행동경제학이라고 한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카너만 교수가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합리성 전제를 비판하는 많은 사례와 실험을 제시하였는데 그중 하나를 살펴보자. A에게 100만원을 주고 이 중 얼마를 마음대로 B에게 나누어주되 만일 B가 수취를 거부할 경우 A와 B는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실험이다. B가 합리적이라면 얼마를 받더라도 한 푼도 받지 않는 것보다는 효용이 높으므로 수취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A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B가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거부할 이유가 없음을 알고 있고 자신은 많이 가질수록 이익이므로 최소단위인 1만원만 B에게 지급하고 자신이 99만원을 가지며 B도 1만원을 받고 만족하는 것이 양자 모두에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실제 실험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30만원 내지 50만원을 B에게 지급했으며 보다 놀라운 사실은 B가 30만원을 받고도 수취를 거부한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고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인간이 항상 합리적인 존재는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정책이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여 추진되지만 모든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이 중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첫 번째는 어느 지자체에서 쥐를 박멸하기 위해 쥐를 잡아오면 1마리당 100원의 상금을 주기로 한 경우이다. 결과적으로 잡아오는 쥐의 숫자는 많았으나 도시의 쥐 숫자는 줄지 않았는데 이는 상금을 타기 위해 쥐를 키우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어린이집에서 저녁 늦게 오는 학부모를 줄이기 위해 늦게 오는 사람들에게는 벌금을 매긴 경우이다. 결과는 보다 많은 학부모가 더 늦게 아이를 데리러 왔는데 이는 벌금을 냄으로 인해 늦게까지 아이를 맡기는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책실패라는 측면에서는 양자가 동일하지만 인간의 합리성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경우는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였으나 정책당국이 합리성의 결과를 잘못 예측한 것이며 두 번째 경우는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손실을 감수한 것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비합리적인 행동이 발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반드시 합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합리적인 경우에도 그 합리성에 따라 나타날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국방장관이었던 럼스펠드는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인지와 관련하여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unknown unknowns)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실제 모른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지만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매우 복잡다기하며 사전적으로 행동의 결과를 추론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정책결정자들은 보다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서명국 한국은행 인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