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특이한 아동학대 논란이 일고 있다. 2개월 동안 경찰의 수사에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자 아동학대를 주장하는 부모가 "경찰이 무혐의 처리하려 한다"며 맘카페와 SNS상에 피해를 호소하면서 벌어진 일인데, 이미 맘카페와 SNS 여론은 '어린이집 아동학대'로 단정 짓고 비난을 쏟아 붓고 있다. 충격에 빠진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논란이 된 어린이집 원장은 "억울함을 호소해도 누구도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 너무 무섭다"고 했다. 아이의 부모는 맘카페와 SNS를 통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아동학대 논란에 대한 양측이 입장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 3살 여아의 사타구니 멍 자국
인천 서구의 C어린이집에 다니는 A(3)양의 허벅지 안쪽에 멍이 든 것은 지난 4월 5일. A양의 어머니 B씨가 아이를 씻기려고 보니 왼쪽 사타구니 쪽이 유난히 빨갛게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첫날은 그냥 지나쳤다가 다음날 다시 살펴보니 양쪽 사타구니 왼쪽엔 손자국, 오른쪽엔 멍 자국이 희미해져 가고 있어 일단 사진을 찍어두고 다시 다음날 병원에 찾았다.
B씨는 "보육교사들이 아이의 허벅지에 멍이 든 것을 분명히 확인했을 텐데 4월 6일 집에 보내면서 부모들에게 멍이 든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A양의 멍이 손자국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C어린이집 측 관계자는 "세 살의 체구가 작은 A양의 멍 자국의 크기는 짧은 사타구니와 무릎 사이의 절반가량밖에 되지 않아 손을 대봐도 어른 손으로 상처를 냈다고 보기에는 너무 작다"며 "아이의 멍이 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학대에 의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CCTV 녹화 영상, 진실이 담겨 있을까
경찰은 어린이집에서 CCTV 녹화내용을 확보해 학대 여부를 수사 중이다. 그러나 경찰은 신고 접수 두 달이 지나도록 조사했지만, 보육교사의 학대 장면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CCTV 사각지대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B씨는 서구에 C어린이집 조사를 의뢰했다. 구 조사 결과에서도 어린이집 내 CCTV의 사각지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 진료 의사의 아동학대 판단?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아이의 멍이)알러질 일 것이라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학대가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는 B씨의 주장을 보도했다.
C어린이집 관계자는 "B씨가 맘카페에 올린 글을 보면 아이 상태를 본 의사가 습진이나 피부질환에 의한 증상은 안 보인다. 의심은 되지만 학대라 판단하기 어려우니 경찰의 도움을 받아보시라고 하시길래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며 "신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맘카페 올린 글과 언론에 설명한 내용이 다르다"고 했다.
이에 대해 B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의사가 자신이 신고한 것을 알리지 않고, 대외적으로 내가 신고한 것으로 해달라고 해서 맘카페에 신고자를 나로 해서 글을 올렸다"며 "실제로는 의사가 경찰에 신고한 게 맞다. 다만, 어느 병원인지는 의사가 누구인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신고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사실관계는 경찰 수사에서 드러나겠지만, B씨가 피해를 호소하면서 좀 더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신고자를 의사로 얘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B씨의 글에서 의사도 의심은 되지만 학대라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는 것도 아동학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 비난 여론 속 어린이집 실명 공개 피해 커
A양 허벅지에 든 멍이 어떻게 들었는지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들은 여론의 매서운 뭇매를 맞고 있다.
B씨는 "경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릴 것 같다"며 멍든 아이의 사진을 여러 맘카페 등에 올리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을 본 맘카페 상당수 회원이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학대가 의심된다며 동조하는 댓글을 올렸다. 일부 댓글에서는 "(아이들을)학대하는 인간쓰레기들은 다 XX버려야 한다"는 섬뜩한 댓글까지 올라왔다.
A양 학대 주장에 대해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CCTV 상에서도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실제로도 A양을 학대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맘카페 회원들의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집 측은 "B씨가 아동학대 신고 이후 경찰의 수사 결론이 나기도 전에 맘카페와 SNS에 마치 자신의 신고 내용이 모두 사실인 것처럼 단정하거나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내용의 글을 반복적으로 올려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집 측은 "B씨가 A양의 멍든 사진을 올리면서 "널리 퍼트려 달라"고 학부모들을 선동하고 있다"면서 "어린이집 실명을 공개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학대 어린이집으로 낙인 찍혀 지금까지 13명의 아이가 퇴소했다"고 했다.
C어린이집을 운영하는 D원장은 "B씨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외부에 알리면서 어린이집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말할 수 없는 막말과 비난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어 B씨를 상대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경찰 수사 결론 승복 여부는 미지수
B씨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사과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는 말을 기사에 꼭 넣어 달라"며 "선생님이 사과하지 않으면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 오히려 다른 아이들의 학대 정황을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D원장은 "10년간 아무 탈 없이 모범적으로 운영되온 어린이집이 하루아침에 '학대 어린이집'으로 낙인 찍혔다"며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내용의 글을 반복적으로 올린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D원장은 "경찰이 무혐의 처분하더라도 이미 아동학대 어린이집으로 낙인 찍혀 어린이집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최소한의 억울함이라도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처럼 어떤 이유로도 학대를 정당화할 수 없다. 최근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들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충격적인 일들이 많다 보니 '아동학대'라는 말이 나오면 사실 여부를 떠나 일방적인 비난과 욕설이 댓글로 달린다.
한 번 비난 대상이 된 어린이집은 아동학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풍비박산'이 난다. 이후에 결백이 밝혀지더라도 실추된 이미지를 복원하기 어렵고 피해보상도 받기 어렵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양쪽 모두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과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데도 '아동학대'에 대해서만큼은 여론의 인식이 피해 주장 중심으로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며 "민감한 부분이 많아 수사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현재 경찰과 서구 모두 이번 논란에 대해 "조사 중인 사안이라 밝힐 수 없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경찰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그 결과에 양측 모두 승복할지 아직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진호기자 provinc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