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숨 막혔던 지난해 여름, 유례없는 긴 장마에 산하(山河)가 잠겼다. 기상청이 낸 '2020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장마와 태풍으로 인해 46명이 숨지고, 1조2천585억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산사태는 역대 3번째로 많았다.
지난해 6월 24일 시작된 장마는 8월 16일까지 54일 동안 지루하게 이어졌다. 가장 짧았던 1973년(6월 25~30일)에 비해 48일이나 길었다. 이 기간 강수량은 851㎜로, 연간 강수량 1천100~1천300㎜의 70% 이상이 집중됐다. 8·9월엔 태풍이 4개나 동남부 지역을 지나면서 피해가 가중됐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기상청은 공식적인 장마예보를 하지 않는다. 기상업체들에 따르면 올 장마는 중부지방의 경우 이달 25일 시작돼 7월 26일 끝날 것으로 예측됐다. 이 기간 17.7일 비가 내리고 총 강수량은 378㎜로 전망된다. 예년 수준으로 예상되지만 벌써 이상 조짐이 확연하다. 지난달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오면서 5월 강수일수(14.4일)로 기상 관측 이래 최다 기록을 세웠다. 강수량도 142.4㎜로, 7번째로 많았다.
일본 시코쿠 지방은 지난달 15일 장마가 시작돼 1951년 이후 가장 빨랐다고 한다. 규슈 남부(5월 11일)와 북부(5월 15일)는 역대 두 번째로 이른 시기다. 중국도 중남부를 중심으로 비가 이어지고 집중호우가 발생했다. 지난달 평균강수량은 1961년 이후 가장 많았고, 양쯔 강은 1865년 관측 이래 156년만에 최고 수위를 기록했다.
장마철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발달하면서 전선을 형성해 북동아시아 지역을 오르내리며 비를 뿌린다. 연간 강수량의 30~40%가 집중되면서 벼농사 작황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장마 기간에 적당량 비가 내리면 고온다습한 기후와 맞물려 농작물 재배에 적합한 환경이 된다. 여름철에 비 내리고 뜨거워야 풍요로운 가을을 맞을 수 있다.
장마철 기상은 예측불가다. 게릴라 호우에 태풍까지.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중국은 벌써 물난리로 장강(長江)이 위태롭다. 지구환경 변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있다. 대자연은 때로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시험한다. 겸손하게 순응하고, 만일에 대비해야 한다. 하늘이 내린 재해는 피할 수 없으나, 피해는 줄일 수 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