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해 코로나19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관철시켰다. 이 지사의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에 여론이 호응하자, 끝까지 선별지급을 고민하던 정부가 두 손을 든 것이다. 성남시장 시절 발아한 '이재명 기본소득'이 경기도를 넘어 전국적인 의제로 떠오른 순간이다. 날개를 단 '이재명 기본소득'은 거침이 없었다. 경기도는 기본소득박람회로 정책 홍보를 강화했고, 이 지사는 페이스북을 기본소득 기관지로 활용했다.
잘 나가던 이재명 기본소득이 여야 대권주자와 유력인사들의 십자포화에 갇혔다. 발단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과 설전이었다. 빈곤층 현금지원이 핵심인 오 시장의 안심소득 정책실험을 이 지사는 '차별급식 시즌2'로 비판했다. 이재명 기본소득의 우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 유승민 의원이 이재명 기본소득을 현금 포퓰리즘이라며 오 시장 편을 들고 나섰다.
이 지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의 저서를 인용해 기본소득을 옹호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석학과 유승민 중 누구 말이 옳겠느냐'는 식의 반격이었다. 이 장면에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바네르지 교수의 기본소득론은 선진국용이 아니라 후진국용 정책'이라며 그의 저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원문을 공개했다. 이 지사의 바네르지 인용이 아전인수라는 반격이었다. "한국은 복지 후진국"이라는 이 지사의 답변은 궁색했다.
여당 대권주자들도 이재명 기본소득 저격에 가세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 지사의 기본소득은 기본 요건도 갖추지 못했고, 인용한 학자들의 주장마저 왜곡했다"고 혹평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돈을 나눠 주는 건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박용진, 이광재 의원도 비판의 대열에 섰다. 이 지사가 나홀로 '기본소득 농성전'에 갇힌 형국이다. '이재명'을 견제해야 할 야당의 전략과 여당 경선 경쟁자들의 입장이 연합하는 우연(?)이 절묘하다.
기본소득 논쟁은 SNS에서 시비를 가릴 수 없는 거대 담론이다. 나라의 운명을 가를 거대 정책이 페이스북에서 정략적 설전으로 소비되는 정치가 참담하다. 바네르지 교수는 문제의 저서에서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조치들이 '나쁜 경제학'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기본소득 논란에 딱 맞는 경고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