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사를 바꾼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을 꼽으라면 어떤 걸 뽑을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세계적 석학인 미국의 고(故) 피터 드러커는 '컨테이너'를 꼽았습니다. 투박해 보이는 단순한 강철 상자 정도로 생각될 수 있는 컨테이너가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세계 물류업계의 혁신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쉽게 지나쳐왔던 컨테이너가 가진 이야기,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대형 선박에 화물을 싣고 내리기 위해선 많은 인력과 장비가 필요합니다. 화물마다 크기와 무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운송 과정에서 화물이 망가지지 않도록 포장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규격화된 철제 상자에 이런 화물을 담아서 기계로 배에 싣거나 내릴 수 있도록 한다면, 화물 운송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화물의 안전한 운송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컨테이너는 바로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류 혁신 가져온 '컨테이너'
현대적 개념의 컨테이너가 상용화된 건 60여 년 전입니다.
마크 레빈슨의 'THE BOX'를 보면 1956년 4월 유조선을 개조한 '아이디얼 X호'라는 배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35피트(약 10m) 길이의 상자 58개를 미국 뉴저지에서 휴스턴으로 5일 만에 운반한 것이 컨테이너 운송의 시작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후 표준화 등의 과정을 거쳐 컨테이너는 지금과 같은 모습에 이르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길이 20피트(6.1m), 높이 8.5피트(2.6m), 폭 8피트(2.44m) 크기의 컨테이너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됩니다. 컨테이너 개수를 세는 단위는 TEU(Twenty foot Equivalent Unit)인데, 길이 20피트 컨테이너 1개가 1TEU를 의미합니다. 길이 30피트, 40피트, 45피트 등의 컨테이너도 있습니다.
컨테이너의 도입은 물류 현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람이 싣고 내려야 했던 화물은 거대한 크레인이 대신 옮기게 됐고, 부두 내에서 화물을 이동시키는 일도 지게차 트럭이 대신하게 됐습니다. 컨테이너는 물류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철강판으로 둘러싸여 있어, 장거리 이동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충격과 폭우 등으로부터 화물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우리나라 첫 전용 부두는 '인천항'
인천항은 대한민국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부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인천 내항 4부두 컨테이너 전용 부두입니다. 1974년 5월 인천항 갑문과 함께 준공됐는데, 5만t급 1선석을 포함해 5척의 선박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컨테이너 크레인 3기가 설치됐고, 연간 27만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인천항의 주력 컨테이너 부두는 송도국제도시에 조성한 신항입니다. 신항에선 선광과 한진이 각각 컨테이너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1대 가격이 100억원 규모인 컨테이너 크레인이 총 14대 설치돼 운용 중입니다.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처리됩니다.
인천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2017년 연간 300만TEU를 돌파했습니다. 2013년 200만TEU 돌파 이후 4년 만에 거둔 성과입니다. 300만TEU의 컨테이너를 일렬로 연결하면 서울과 부산을 24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가 나온다고 합니다. 연간 300만TEU 처리 실적을 가진 항만은 부산항 말고는 국내에 없다고 하네요.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은 상승 추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약 326만4천600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해 전년 대비 5.6% 증가했는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물동량 처리 실적이 줄어든 부산항, 광양항 등과 대비되는 것이었습니다.
'섬세함' 중요한 크레인 기사
컨테이너를 대형 선박에 싣고 내리는 일은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들의 몫입니다. 45m 높이의 크레인 조종실은 3.3㎡ 남짓. 바닥은 크레인 아래에 있는 컨테이너들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로 돼 있습니다. 배 위에 있는 컨테이너를 집어 올려 부두에 대기하고 있는 트럭 모양의 야드 트랙터에 올려놓는 일이 주된 역할입니다.
컨테이너를 배에 싣는 작업은 반대 순서로 진행됩니다. 겉으론 인형 뽑기 게임처럼 재미있어 보여도, 상상 이상으로 고된 작업입니다. 크레인의 팔 부분을 따라 컨테이너를 앞뒤로 10~40m씩 움직이기를 수백 차례 반복해야 해 녹초가 되기 십상입니다.
컨테이너를 옮기는 과정에서 배가 가벼워지면서 높이가 변하고, 선수와 선미 높이차에 따른 경사 등도 생각해야 합니다.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죠. 조금만 실수해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때문에 2시간 이상 연속해서 작업하는 건 금지된다고 합니다.
컨테이너, 수리도 '중요'
컨테이너 수명은 15년 정도라고 합니다.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구멍이 뚫리고 훼손되는 일이 생깁니다. 이런 경우 수리해야 합니다. 컨테이너에 난 작은 구멍 하나가 컨테이너 안에 있는 화물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국제 컨테이너 임대사 협회'(IICL) 규정에 따라 손상 여부를 판단하고, 수리가 이뤄지게 됩니다. 페인트칠, 용접, 내부 청소까지 수리가 마무리된 컨테이너들은 새로운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야적장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인천에는 컨테이너 부두가 있는 신항과 남항 등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컨테이너 수리업체가 있습니다.
컨테이너는 단순 화물만 옮기던 것에서 각종 활어나 신선식품도 실을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물류 상황에 맞게 모습을 바꾸고 있는 것이죠. 100년 뒤 물류 시스템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컨테이너는 여전히 원활한 물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