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지위 과시 용도로 많이 쓰여
요란할수록 별볼일 없는 사람 많아
유명하거나 자신감에 찬 사람들은
겉치레 아니어도 충분히 인정 받아
명품 걸쳤다고 품격 높아지진 않아


홍승표
홍승표 시인
수원에서 여의도로 출퇴근할 때입니다. 그때, 전철 이용객이 많았지요. 하지만 저는 젊었고, 노약자 예우차원에서 아예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온종일 일에 시달려 피곤할 때면 나도 앉아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종점에서 타는 게 아닌지라 앉을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전철에 올랐는데 역시 만원이었지요. 그런데 몇 정거장을 지나자 자리가 생겼습니다.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찰나, 갑자기 빈자리로 '휙' 소리를 내며 가방이 날아들었지요. 곧이어 한 중년여성이 내동댕이쳤던 가방을 집으며 서둘러 자리에 앉았습니다. 눈여겨보니 명품 '똥'가방인데, 주인 잘못 만나 하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다 보면 함께 해야 할 모임이 적지 않습니다. 남자들만 모일 때는 별 부담 없이 만나는데, 부부동반이면 달라지지요. 일단 입을 옷이 없다고 짜증 내고, 몸단장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목걸이와 반지 등의 액세서리를 챙기며 명품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요. 왜 명품을 찾을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상대보다 낫다는 것을 보이고 싶은 몸짓이 아닌지…. 모임에 나가보면 한 여자가 다른 여자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는 경우가 흔하지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남들과 비교를 하는 것이라서 옆에서 지켜보기가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분위기조차 어색해지고 불편해지는 일도 있지요. 그런데 아무리 눈총을 줘도 안하무인이니 그도 병이라는 생각입니다.

여자가 명품이라면 남자는 명함이지요. 자신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용도로도 많이 쓰입니다. 그런데 명함에 적힌 것이 빼곡할수록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많지요. 돈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치고 진짜 부자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어쩌다 신도시 개발 등으로 보상을 받은 사람이 대다수지요. 진짜 부자는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다 압니다. 명품 옷과 액세서리를 두르는 여자나 갖가지 직위가 가득 적힌 명함을 뿌리는 남자나 다 과시욕의 발로입니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거나 남이 뭐라 든 자신 있는 사람은 굳이 명품이 필요 없지요.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다고 자세하게 명함에 나타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겉치레가 아니어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고(故) 정주영 회장이 밑창이 다 달아빠진 구두를 신은 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지요. 명품이 많은 사람치고 생각이 건전한 사람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어른이 그러니 아이들도 명품 타령이지요. 책가방이나 운동화도 명품이고 심지어 명품 로고가 새겨진 종이가방을 사서 들고 다니니 할 말이 없어집니다. 제 돈으로 샀을 리는 없고, 자식이 졸라댄다고 사주는 부모가 더 한심하다는 생각이지요. 굽 높은 것을 신는다고 키 커지는 건 아닙니다. 명품을 걸쳤다고 품격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지요. 너도나도 명품을 가지고 있다면 명품으로서 가치도 없고 희소성이 없는데도 거액을 들여 사는 건 단순한 욕구가 가져온 획일적 현상으로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명품에 대한 소유욕은 남자보다 여자들이 절대적이지요. 그러나 명품에 목숨 걸고 사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품을 걸친다고 사람까지 명품이 되는 건 절대 아니기 때문이지요. 회갑을 맞았을 때 아들로부터 제법 값이 나가는 시계를 선물 받았습니다. 하지만 꽤 오래 고이 모셔(?) 두었지요. 휴대전화가 있으니 굳이 별도의 손목시계가 필요하지도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직에서 은퇴하고 나서는 머리 염색도 하고, 그 시계를 차고 외출도 하지요. 나를 내세우거나 으스대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나이 들면서 초라해 보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어쩌면 이마저도 남들에겐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까 걱정이 드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홍승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