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바꾸고 싶다는 어머니
노인 인구가 많은 집 근처로 나갔다
젊은점원은 '온갖 질문' 친절 응대중
뒷 목 땀에도 혼자 척척 밝은 표정
나도 한참 걸려… 세상은 아직 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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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어머니께서 휴대전화를 바꾸고 싶다고 하셨다. 당장 바꾸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옛날에 속 많이 썩힌 게 죄스럽기만 하다. 어머니 신분증만 있으면 어디서도 살 수 있는 휴대전화다. 집 근처에서 웬만한 것으로 장만해 드리자, 생각한다.

독바위역에서 불광역까지는 서울은 서울이지만 아직도 중소 도시 정취가 난다. 이런 소리도 주민들 들으시면 집값 떨어지는 소리라 할지 모르지만, 정겹다는 뜻이다. 떡집이 많은 것은 옛날 사람이 많이 산다는 뜻이다. 노인분들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동네다. 한가한 거리를 구경꾼처럼 걷다가 휴대전화 대리점 중에 그래도 좀 크다 싶은 대리점으로 들어간다. 베스트 뭐라는 이름을 가졌다.

젊은이 하나가 노인 두 분을 응대하고 있다. 역시 옛날 분들이라 하나를 설명해도 자꾸 되묻는 통에, 아예 저쪽 탁자에 가 앉아서 기다리기로 한다. 휴대전화 하나 개통하는데 얼마나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지 모른다. 휴대전화 종류는 얼마나 많고 약정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두 분이 나가시고 내 차례가 된다. 나가시던 분들이 다시 들어와 깜빡하셨다는 듯 또 뭔가를 물으신다.

대리점원이라고는 토요일에 젊은이 한 사람뿐이다. 나이는 한 서른쯤 된 것 같다. 참 끈기가 있다. 말끝마다 예, 예, 그렇지요 등등 공대를 하는데 시쳇말로 요즘 젊은이 같지 않다.

드디어 내 차례다. 내가 그를 향해 썩 다가선다. 그가 '아버님, 어떻게 오셨어요? 아버님 휴대폰 바꾸시려고요?' 한다.

순간적으로 허를 찔린 기분이다. 내가 벌써 '아버님'으로 불릴 나이가 됐나? 하기는 지난 번에 고혈압으로 늘 다니는 내과에 가서도 같은 소리를 듣기는 했다. 오랜만에 혈액검사를 하려는데 평소에 안 보이던 간호사가 나를 보고 '아버님 이쪽으로 오실게요'한 것이다. 공대법과 명령법이 교묘하게 결합된 이 '오실게요', '하실게요' 등은 요즘 젊은이들의 발명품이다.

'아니요. 어머니 핸드폰을 좀 하나 개통할까 해서요'. 나는 가급적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용건을 밝힌다. 젊은 점원은 다시 '아, 아버님이 어머님 거 사러 오셨구나!' 한다. 속으로 웃음이 난다. 나를 보고 아버님이라 할 것 같으면 '어머님 거' 아니라 '할머님 거'라 말해야 하지 않나?

나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휴대전화들을 이것저것 고른다. 그 와중에 또 노인분이 가게 문을 연다. 나를 상대하다 말고 젊은이가 또 이 새로운 분을 향해, '아, 아버님, 어떻게 하죠?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소리를 들으니 지난번에 왔던 분이다. 뭔가 어떻게 돼서 이번에 다시 새 휴대전화를 주문해 온 것을 가지러 왔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나를 향해서 양해의 뜻을 눈빛으로 구한 후, 노인을 향해서 또 그 예의 '친절'을 떤다. '이쪽에 앉으셔요. 믹스커피라도 드릴까요?'.

잠깐 또 기다리는 사이에 나는 이 젊은이의 뒷목에 흐르는 땀을 보았다. 날씨는 덥고 무슨 일인지 대리점에 일하는 사람은 이 친구 하나뿐이다. 손님을 상대하고 기록하고 개통하고 하는 일들을 전부 혼자서 처리하면서도 얼굴 표정은 밝게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어머니 휴대전화를 골라 개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들였고, 그 사이에 나는 이 젊은이가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다 보고 들었다. 그는 베스트 뭐라나 하는 이 대리점의 베스트 점원이었다.

대리점을 나와 걸으면서 생각한다. 아직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군. 이런 젊은이들이 많고, 또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할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즘 젊은 세대는 나이든 사람들한테 염증을 내는 중이다. 먹고 살 방도는 적은데, 그나마 있는 것을 윗세대가 다 가로채 갖고 있는 것만 같아서일 것이다. 이 세대 간의 격절을 메워 줄 사람은, 또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