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대표, 한국 정치사의 전대미문 대사변
민심 설레고 정치권 요동… 與에 까지 여파
첫 행보는 국민과 소통 보수의 과거와 단절
지켜보는 시선은 따뜻… 이젠 민주당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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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30대 야당 대표 이준석.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번도 없었던 전대미문의 대사변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이준석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같은 기운에 민심은 설레고 정치권은 요동친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치솟고, 더불어민주당의 젊은 대선주자 박용진이 약진한다. 이준석 효과가 야당은 물론 여당에 미친다.

이준석은 13일 백팩을 메고 지하철과 '따릉이'를 타고 출근했다. 동네 카페에서 안철수와 만나 합당문제를 논의했다. 공식일정 첫날인 14일엔 아침 일찍 대전 현충원을 찾아 천안함, 연평해전 전사자 묘역에 참배했다. 대전에서 곧바로 수백㎞ 떨어진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광주의 역사적 상처에 공감하고, 전두환을 비판했다.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야 늦은 오후 첫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국민의힘 의원 전체와 상견례를 마쳤다.

동작동 현충원은 여야 유력 정치인들의 참배 1번지다. 대통령이 되려는 자나 된 자, 보수나 진보정당의 대표들이 독립지사와 역대 대통령의 묘역에서 역사적 유훈과 통합의 리더십을 새긴다. 이준석은 이를 뒤로 물렸다. 대신 대전 현충원에서 천안함, 연평해전 등에서 산화한 당대의 전몰장병을 추모하고 소외된 유족들과 함께 눈물 흘렸다. 광주에서는 오늘의 아픔에 동참하고 과거의 상처에 공감하고 보수의 과거와 단절했다. 그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민심과 소통한다. 36세의 나이라 가능한 일이다. 나이가 이렇게 무섭다.

북한에 유훈통치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유훈정치가 있다. 진보나 보수나 과거에 집착한다. 진보는 민주화운동 역사 전체를 전유하면서 울타리 밖의 정당과 국민을 반민주 반개혁 세력으로 규정한다. 노무현의 비극으로 결속한 진영은 '내 편'에게만 마음의 문을 연다. 문재인과 조국을 향한 열렬한 편애는 그들이 노무현의 유훈을 계승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보수는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체적 자부심으로 진보진영을 자유시장의 적으로 단정한다. 박정희를 그리워하며 대를 이어 박근혜를 선택했고, 박근혜 탄핵에 태극기로 저항했다. 유훈을 독점한 세력들은 당연히 정치적 특권을 독차지하고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87년 체제 이후 각자의 유훈을 독점한 진보와 보수정당은 적대적으로 공생해왔다. 두 기득권의 공생을 위해 국민 전체가 과거에 갇혀 오늘의 진영에 편입됐다. 30년 넘는 정치적 착취를 겪고서야 국민들은 두 기득권이 형편없는 집단임을 깨달았다. '박근혜는 아니었다'는 민심이 '문재인도 아니다'라고 외친다. 두 기득권을 싹 갈아엎을 기세다. 오늘을 공감하고 내일을 말하는 새 인물을 찾아 나섰다.

이준석은 민심이 거둔 첫 수확이다. 팔공산 대신 에베레스트를 바라보고, 대구에서 박근혜 탄핵이 정당했다고 밝히고, 공천 자격시험을 공약한 미혼 청년에게 민심은 한눈에 반했다. 이준석은 시대가 건넨 손과 악수를 나눴다. 보수의 전통적인 유훈과 유산에서 자유로웠던 덕분이다. 이준석의 거친 생각들을 바라보는 당원들의 눈빛은 불안할지언정,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뜻하다. 이준석은 보수를 과거가 아닌 오늘과 미래로 데려가고 있다.

이제 민주당 차례다. 누가 시대와 악수를 나눌 것인가. 조국을 신격화하는 강력한 팬덤은 시대와 불화하고 있다. 누가 대선 후보가 되든지 조국의 유훈과 유산을 계승하고서는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조국은 "나를 밟고 전진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조국을 밟으려 않는다. 하지만 임계점은 임박했다. 노무현, 문재인, 조국에 갇히길 거부하는 미래 권력은 당내 기득권에 반기를 들 것이다. 불발된다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겪었던 과정을 되풀이하는 고통 속에 빠진다.

기득권 정치를 엎어버리려는 민심이 몰려오고 있다. 썰물일 때 조개를 캐고 밀물일 때는 통발을 놓아야 한다. 물 때에 조응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