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실존적이며 공동체적 존재
나의 내면이 충만해야만 행복하다
단 다른이가 불편·비참하지 않아야
헬레니즘 시대 철학·정치적 삶 반추
무너진 사회 기층권력… 복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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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산다는 데 뭐 특별한 것이 있으랴. 잘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 웃으면서 "참 좋은 세상이었다"라고 말하면서 떠나갈 수 있다면 그게 제일 훌륭한 삶이 아닌가. 그걸 우리는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행복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데, 문제는 행복이 뭔지를 모른다는 데 있다. 전례 없이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고대 헬레니즘 시대에 철학자들은 삶의 목표를 행복에 두었다. 그들이 말하는 행복은 물질적 풍요나 권력을 소유하는 삶이 아니었다. 행복(eudaimonia)이란 그리스 말은 나의 영혼(daimon)이 좋은 상태(eu)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좋은 상태이며, 영혼이란 것은 또 뭔가? 영혼이 무슨 실체처럼, 또는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있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나의 생각과 의식,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궁극적인 어떤 형상을 영혼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영혼의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명상하기도 했고, 절제와 금욕을 추구하기도 했다.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 절제하고 욕심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니, 얼핏 보면 참 모순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이들은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며, 그러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가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키케로 같은 사람은 "영혼을 갈고 닦는 것이 철학"이라고 말한다. 철학이 무슨 특별한 지식이 아니라 영혼을 갈무리하는 앎과 행동이었다. 그래서 철학은 영성수련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지닌 부자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한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말하고, 행복산업과 행복심리학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삶을 해치는 각종 지표에서 한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위국이다. 자살률, 노인 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반대로 출산율과 자유에 대한 의식, 청소년들이 느끼는 행복도 등은 늘 꼴찌 근처를 맴돌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니체는 언젠가 "영국 사람만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로 실증주의적 문화를 비판한 적이 있다. 그들이 추구한 행복은 다만 물질적 풍요에 있기 때문이었다. 참된 행복은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데 있지만, 불행은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있다. 행복하지만 행복할 줄 모르고 행복을 찾아 방황할 때 우리는 불행하다.

행복을 알기 위해서는 삶을 돌아봐야 한다. 사람은 지극히 실존적이면서 공동체적 존재다. 나의 생각과 느낌, 나의 내면이 충만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 그와 함께 진정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 역시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실존적으로 충만해도 내 옆의 사람과 불편하고, 다른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다면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사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이웃사람들이 울부짖고 있는데 나만 행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헬레니즘 시대 철학자들은 나의 영혼을 갈고 닦는 철학과 함께,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생활태도를 삶의 최고 가치로 여겼다. 행복은 그 안에 자리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생각할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남들이 말하는 물질적 풍요나 권력, 명예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그들은 안으로는 영혼을 갈고 닦기 위해 노력했으며, 밖으로는 공동체의 가치와 선을 지키기 위해 말하고 행동했다. 이런 행동이 철학과 정치였다. 철학이 영혼을 갈고 닦는 일이라면, 정치는 공동체(polis)의 일을 다루는데(politics)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학과 정치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이 두 가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 모두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한 번의 선거 패배로 모든 개혁을 포기하고 퇴행하는 정권만큼이나, 오직 정권을 되찾기 위해 온갖 반공동체적 행태를 선동하는 정치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갖은 거짓과 행패를 자행하는 언론과 법조계가 불행의 원천이 아니란 말인가. 이 사회의 기층 권력은 너무나 반공동체적이다. 삶과 실존을 돌아보는 철학과 공동체를 위한 정치를 복원하지 않은 채 행복을 기대하는 거짓에서 돌아서야 한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