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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서울 홍제동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났다. 출동한 소방관들은 5분 만에 불길을 잡고 7명을 구조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아들이 안에 있다"고 절규했고, 소방관 9명이 구조를 위해 재진입했다. 곧 2층집 전체가 무너져내렸다. 소방관 6명이 순직했다. 방화범인 아들은 불을 낸 뒤 친척집에 은신 중이었다.

2011년 평택 서정동 가구전시장 화재 때도 이재만, 한상윤 소방관은 동료들을 대피시킨 뒤 마지막으로 나오다가 잔해에 깔려 순직했다. 2014년 7월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귀환하던 강원소방본부 구조헬기가 추락했다. 마지막 수색 임무를 마친 소방관 5명이 순직했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 자신의 목숨을 거는 용기는 숭고하다. 소방관은 '숭고한 희생'을 숙명으로 짊어진다. 화재 현장은 지옥일테다. 숙명의 실천은 의지이고 공포의 회피는 본능이다.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소방관의 기도'가 간절한 이유다. 작가 김훈은 소방관에게 "살려서 돌아오라. 살아서 돌아오라"는 헌사를 바쳤지만, 해마다 돌아오지 못한 순직 소방관들이 그치지 않는다.

오늘 경기 광주소방서 김동식 소방관이 영면에 든다. 17일 쿠팡 이천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위해 불길 속으로 진입했다가 부하 대원들을 대피시키고 혼자 남겨졌다. 선두로 진입했다 마지막으로 철수하다 불길 속에 갇혔다. 이틀 동안 그의 생환을 기원했던 국민들은 19일 그를 영정으로 대면했다.

김 대장은 1계급 특진과 훈장을 받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숭고한 희생에 대한 당연한 예우다. 하지만 희생에 보답하는 예우만으로 부족하다. 미국 시민들은 평소에도 소방관을 '영웅'으로 깍듯이 예우한다. 우리는 119소방대원을 온갖 잡일로 괴롭히는 시민들과 욕하고 때리는 취객들로 넘쳐난다. 평소엔 하대하면서 희생한 뒤에 추모한다면 위선이다.

경기도는 김 대장 영결식을 경기도청장(葬)으로 치른다. 결코 넘치는 예우가 아니다. 그런데 앞서 홍제동 화재 순직소방관 영결식은 서울소방방재본부장, 평택 화재 순직소방관 영결식은 송탄소방서장으로 치렀었다. 소방영웅을 보내는 사회적 예우도 통일된 '격'을 갖춰야겠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