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장항습지(5.956㎢)가 지난달 국내 24번째로 람사르 습지에 등록됐다. 람사르 습지는 생물다양성 보전에 중요한 지역 중 람사르협약 사무국이 인정한 국제공인 습지이다. 람사르협약은 습지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이다. 우리나라는 협약가입국으로서 습지보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습지보전법을 시행 중이기도 하다. 람사르 습지 등재는 개별 국가의 보호를 넘어 국제적 보호 대상으로 격상되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장항습지의 람사르 습지 등재를 안타까워한다. 반쪽짜리 등재라 한강하구 습지 전체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환경부는 지난 2006년 한강하구습지 60㎢를 습지보전법상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국내 최대 습지보호구역으로 세계적 멸종위기 야생조류와 멸종위기종들이 서식한다. 그런데 이 중 일부인 장항습지만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는 바람에, 한강하구습지 대부분의 보전 가치가 상대적으로 격하됐다.

환경부도 애초엔 환경단체와 같이 한강하구습지 전체에 대해 람사르 습지 지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주민을 설득한 고양시와 달리 김포시는 주민반발로 람사르 습지 지정 신청을 할 수 없었다. 람사르 습지 등록 신청에서 주민 동의는 절대적이다. 주민이 한사코 반대하면 등록 절차를 개시하기 힘들다. 김포를 비롯한 한강하구 주민들이 람사르 습지 등록에 반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군사보호·국가하천유지·문화재보호 등 각종 중첩규제에 시달려 온 터에 람사르 습지 지정이 또 하나의 규제가 될까봐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지만, 중첩규제로 인한 재산권 침해 역사를 감안하면 주민들만 탓할 수는 없다.

습지 보전은 반드시 지켜야 할 자연유산을 후손에 물려주는 국가 정책의 핵심이다. 강의 하구나 연안 갯벌에 분포한 자연습지는 지리적 위치상 개발압력이 거센 곳들이다. 매립하면 택지가 되고 공단이 된다. 지방자치단체에 습지 보전을 미루면, 단체장의 생각에 따라 습지의 운명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습지보호를 위한 주민설득을 지방자치단체에 미뤄서는 정부가 람사르협약 가입국의 의무를 다하기 어렵다. 사실상 습지보호 선언에 불과한 습지보전법도 그대로 두면 안 된다.

자연습지 보호를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한 뒤, 각자의 역할을 습지 보호를 위해 통합적으로 발휘하는 진지한 자세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