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는 80대 3명 중 1명이 앓을 정도로 흔한 노인성 질환이다. 기억과 인지력이 저하되고 같은 언행 반복하기, 상습 가출, 폭력성, 망상, 폭식, 섬망 등 증세가 다양하다. 발병 당사자만 아니라 가족과 지인들을 힘들게 한다. 병세가 나빠지고 장기화하면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 균열이 가고, 때론 가정 붕괴로 이어진다. 보호자들은 환자를 돌보는 어려움보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게 더 힘들다고들 한다.
치매는 완치가 없다. 이달 초 미국 FDA(식품의약국)가 알츠하이머 치료제 '애드유헬름(성분 아두카누맙)'의 시판을 승인했으나 증세가 나빠지는 것을 늦추는 효과에 그친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판매하면서 임상 4상을 진행하는 조건이다. 완치도 아닌 지연에 불과한데, 치료비용은 연간 6천만원이 넘는다. 보험 가입자는 부담이 적다고 하나 시장은 '글쎄요'다.
난데없이 치매가 법정 소환됐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공판에서다. 21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강제추행 등 혐의로 그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러자 오 전 시장 변호인단은 공소 사실을 부인하며 피고가 치매 증상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 사건은 강제추행치상이 아니라, 충동적이고 우발적이며 일회성인 기습추행이나 기습추행에 의한 치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어 "오 전 시장이 사건 후 자신이 치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치료를 받았고, 장애 판정을 받아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사건 피해자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사건 직전까지도 팔굽혀펴기로 체력을 과시하더니 갑자기 치매에 걸렸느냐"며 "당신의 주장은 부산시민들의 수장인 시장이 치매 노인이었고, 민주당에서는 치매 노인을 대한민국 제2의 도시 시장직에 공천했다는 의미"냐 반문한다.
피해자 측은 심신미약을 이유로 가벼이 처벌한다면 권력형 성범죄는 계속 반복될 거라며 법정구속을 통해 법의 엄정함을 보여달라고 했다. 오 전 시장은 "얼마 남지 않은 삶, 깊이 반성하고 자숙하며 살겠다"고 진술했다. 사건 뒤 행방을 감췄던 그이기에 진정성에는 의문 부호가 달린다. 변호인은 "'힘 없고 병든 노인인데, 미친 노인네가 정말 미친 짓 했네. 불쌍하다 여겨 용서해달라"고 했다. '하다 하다 (감형을 받으려) 미친 척까지 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