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홍문 무지개 수문부터 무형문화재전수회관·우시장터·문구거리 구경
통닭거리 '유명세' 팔달문 '정조 애민정신' 시장 9곳 의류~공구 총망라
'수원의 근대를 걷다' 순회전 26일~7월16일 도이치 오토월드 1층 로비
'사통팔달의 길을 걷다'. 수원시 근대인문기행 세 번째 이야기는 '시장'이다. 수원천을 따라 성곽 주변엔 다양한 시장이 모여있다. 시장을 보다 보면 3㎞, 2시간 남짓 기획한 코스가 훌쩍 지난다.
사통팔달 수원의 이야기를 포함해 수원지역 근대사를 따라가는 '수원의 근대를 걷다' 순회전시는 오는 26일부터 7월16일까지 도이치 오토월드 1층 로비에 전시된다. 이어 7월17일부터 8월6일까지는 수원컨벤션센터 1층 로비에서 펼쳐진다.
광교산에서부터 흐르는 수원천은 화홍문의 7개의 무지개 모양 수문을 통해 북쪽에서 남쪽의 수문을 거쳐 수원화성을 빠져나간다. 세계유산인 수원화성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절경이다. 특히 7개의 수문을 빠져나가는 물보라를 수원 팔경 중 '화홍관창'이라 했다.
지금은 수량이 적어 평소에 볼 수는 없지만,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물줄기가 쏟아진다. 물길을 따라 모이고 살아갔던 사람들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번 코스의 시작점이 된다.
인근에는 '수원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이 있다. 2004년 개관한 이곳은 전통무형문화재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는 무형문화재 4인의 활동 및 후학 양성 장소이다.
건너편 수원천 왼편엔 '수원 우시장 터'가 남아있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자재를 운반하기 위한 용도로 소가 많이 늘어났고, 정조는 성역이 마무리되자 소를 농민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이후 자연스럽게 발생한 우시장은 하루 평균 400두가 거래될 정도로 번성해 명천, 길주와 함께 전국 3대 우시장으로 발달했다. 팔달문 밖에서 열렸던 우시장이 성안 북수동으로 들어온 것이 1938년이고, 1962년에는 영화동으로 옮겨졌다. 번성했던 우시장은 1978년 곡반정동에서 명맥을 잇다 지금은 사라졌다.
팔부자거리로 불렸던 북수동옛길은 수원화성 축조 이후 이주한 백성들의 삶을 위해 정조가 전국에서 불러 모은 팔부자들이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세워 모여 살던 곳이다. 100년이 넘게 이어지던 부의 거리는 일제강점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골목 벽화로 그 시절 이야기를 전한다.
옆엔 '문구거리'가 있다. 학생이 많아지고 각자 준비해야 하는 학용품이 많았던 1980년대 문구점들이 이 골목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전성기에는 20여 곳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도 10여 곳이 남아 있어 구경하다 보면 수십 년 전 추억이 깃든 보물을 찾을 수도 있다.
매향교는 원래 화성을 축성할 때 잡은 물길 위에 놓였던 다리로, 원래 이름은 오교(午橋)였다. 수원화성 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다리이며, 나무다리였다가 돌다리로, 지금은 다시 콘크리트 다리로 돼 차량도 오간다.
수원천을 따라 내려오면 '수원사'가 보인다. 1920년 4월8일 당시 용주사에서 '수원불교포교소'로 세운 건물이다.
건너편 서쪽은 그 유명한 '수원 통닭거리'다. 수원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우시장을 기반으로 한 갈비 외에 통닭이 떠오르게 한 중심지다.
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매향통닭, 왕갈비통닭의 원조 격인 남문통닭, 평일 낮에도 만석을 자랑하는 진미통닭, 장안통닭, 용성통닭 등 각각의 독특한 풍미와 맛을 자랑하는 통닭집이 즐비하다. 통닭거리는 특히 지난 2019년 1월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의 흥행으로 유명세를 더해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통닭거리 구석구석을 지나 도착하는 '팔달문'은 물자와 사람이 활발하게 오가는 사통팔달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원래 탑산이던 팔달산이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의 시작인 태조 때로 기록돼 있다. 수원화성의 남쪽 문인 팔달문 역시 이 이름을 따랐고, 사통팔달로 백성을 더욱 살기 좋게 하려는 정조의 깊은 뜻이 담긴 셈이다.
수원천변엔 9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시작인 '수원남문시장'은 정조대왕의 어명으로 4일과 9일에 서는 5일장으로 조성돼 문밖 장으로 불렸다. 성안에는 전국의 부자들을 불러 모아 시전을 설치하고, 남문 성 밖에는 5일장을 만들어 사통팔달의 중심이 되게 했다. 영동시장 등 9개 시장의 발원인 셈이다.
문밖 장인 수원장은 100년여를 이어지다 1919년 1월17일 '영동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등록됐다.
9개 시장은 주요 취급 품목이 다르다. 영동시장에서 밀려난 영세 노점상인들이 골목에 자리를 잡고 앉았던 자리에 '못골시장'이 생겼다. 부도 위기의 상가 운영권을 지켜낸 상인들이 순대를 품목으로 선정한 특화시장인 '지동시장', 두 시장 사이에는 '미나리광시장'이 이웃을 반긴다.
서쪽에는 팔달문시장과 남문패션1번가시장(의류, 신발), 시민상가시장(남성복, 여성복), 영동시장(전통한복, 포목, 커튼), 남문로데오시장(갤러리, 표구, 화방) 등이 위치한다.
시장 구경을 마무리할 즈음에 만나는 '거북산당'은 수원의 대표적인 마을굿 중 하나인 거북산당 도당굿을 행하는 당집이다. 마을의 안녕을 빌던 굿으로, 매년 시월 초이렛날 화재가 없고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영동시장 당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마지막 아홉 번째 시장은 구천동 공구시장이다. 남문시장 중 하나지만 성 밖 수원천을 따라 구천교와 매교 사이에 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60년대 말부터 시장화돼 산업화와 함께 크게 번창하며 1980년대에는 100곳이 넘는 공구 가게가 밀집했다. 현재는 70여 곳으로 줄었지만 유유히 흐르는 수원천 옆에서 50년 넘게 영업해 온 대장간에서 대장장이의 담금질을 구경할 수 있다.
/이원근·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