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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뻘 여당 대표와 조카뻘 야당 대표의 상견례로 주목받았던 지난 17일 여야 대표회동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자신의 저서를 선물했다. 이 대표는 송 대표의 책 서명을 보고 "명필이시다. 너무 글씨를 잘 쓰셔서 제가 위압감을 느낀다"고 화답했다. 30대 야당 대표로서 국립대전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첫 문장이 악필로 조롱받았던 터라, 자신의 악필로 송 대표의 필체를 높이는 자학개그로 분위기를 띄운 것이다.

송 대표의 명필은 교육의 유산이다. 586세대는 한글 자·모음을 무수히 필기하는 것으로 초등교육을 시작했다. 받아쓰기 시험에선 받침을 틀려도 회초리를 맞았지만 필체가 바르지 않아도 혼꾸멍이 났다. 중학교 들어가선 오선지를 닮은 영어 공책에 알파벳 인쇄체와 필기체의 대·소문자를 한없이 채웠고, 기본 한자를 필기하며 외워야 하는 한문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키보드 세대가 586의 필체를 따라잡기란 언감생심이다.

최근 경인일보가 주최한 손편지 공모전에 응모한 편지들에서도 일부 청소년들의 글씨체는 추상화를 방불케 해 심사위원들이 해독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나폴레옹이나 톨스토이처럼 악필로 유명한 위인들도 적지 않지만, 아름다운 필체가 글의 무게와 인물의 격을 높이는 건 사실이다. 글씨에서 그 사람의 혼을 느끼는 건 동서고금의 공통된 정서이고, 그래서 '글씨는 마음의 창'이다. 최근 신영복체로 국정원 원훈석을 다시 세우자 국정원 올드보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무기수의 혼이 담긴 서체를 국가보안의 보루인 국정원에 새기니 조직의 정체성이 흔들렸다는 반발일테다.

이 대표가 어제 제주4·3평화공원을 참배한 후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한 매체는 현충원 방명록 악필 논란을 의식해 "또박또박 글씨를 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대표가 악필을 의식해 현충원때 보다 정성을 기울였을 건 틀림없다. 하지만 악필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 없다. 거기서 거기란 느낌이다. 다만 비난과 비판을 의식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귀 기울여 수용하는 태도라면 30대 정당 대표를 향한 우려를 기대로 바꿀 수 있겠기에 그렇다.

이 대표에게 손글씨 연습을 권한다. 명필은 몰라도 개성있는 필체는 만들 수 있다. 앞으로 글씨를 남길 기회가 많아질텐데 필체의 진화로 정치적 성숙을 표현하는 것도 의미있는 에피소드가 될 법해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