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킹스 스피치(Kinㅣg's Speech)'는 말더듬이 콤플렉스를 가진 왕의 애환을 그렸다. 마이크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를 지켜보는 국민과 왕비도 안타깝고 답답하다. 더구나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한 엄중한 시기. 사이다 발언에 목마른 국민을 위해 국왕은 용기를 내 기상천외한 치료법으로 말더듬증 극복에 나선다.
정치인의 화려한 언술은 그 어떤 무기보다 위력적이다. 청중을 사로잡는 연설은 표심을 흔든다. 세기의 지도자들은 대개 이러하다. 그러니 말더듬이는 정치인에게 치명적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뛰어난 식견과 혜안이라도 전달수단이 빈약하면 무용할 뿐이다.
"저의 할아버지는 영국의 가사 노동자였고, 요리사였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아프리카 말로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바로 버락입니다. 축복을 뜻합니다. 이 이름에는 관용의 나라인 미국에서 사람의 이름이 성공의 장애물일 수 없다는 믿음이 서려 있습니다." 2004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일리노이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가 연단에 섰다. 이 연설로, 무명의 42살 풋내기가 전국구로 주목받았다. 2008년 유색인종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됐다.
미국 대선 토론장면을 보면 부러울 정도다. 거친 말이 아니어도, 톤을 높이지 않아도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때론 표심을 찌른다. 우리의 대선 토론은 불편함을 넘어 안쓰러울 지경이다. 누가 더 못했다고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혹평들을 한다.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 배틀'이 시작됐다. 이준석 대표 공약에 따라 토너먼트 방식으로 대변인을 선발하자는 것인데, 564명이 지원했다. 아이돌 가수 출신에 변호사, 전 대기업 대표, 전 아나운서 등 유명인에 국회의원 보좌진과 청년 유튜버도 도전장을 냈다.
'나는 국대(국민의힘 대변인)다' 심사위원에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거론되는 점도 흥미롭다. 결승 토너먼트는 유튜브로 생중계되고, 일반인도 문자투표를 할 수 있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토너먼트는 몰입도가 높고 이변이 많아 흥행에 유리하다.
토론 배틀은 줄 세우기 관행과 계파 정치를 능력 위주의 경쟁으로 깨자는 거다. '말 잘한다고 자질 검증이 다 되느냐'는 우려보다 새 정치 실험에 기대감이 더한 듯하다. 그나저나 우승자는 누구? 대중은 그게 더 궁금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