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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신각신하며 애지중지 '만든 책'
총판 파산 출판사들 대금도 못 받고
팔 수도 없어 고스란히 물류창고에
보험대상 안돼 타버리면 방법없어
이게 현실인데, 또 만들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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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나는 소설가인 동시에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소설가 지망생이었다가 소설가가 되었고 급기야 책을 만들게 된 사람이라는 거다. 책을 빼고는, 소설을 빼고는 내 삶의 알리바이를 설명하기 힘들다.

다음 달에 새 책 한 권이 출간된다. 젊은 작가의 소설이다. 계약을 한 건 반년쯤 되었고, 교정자는 몇 달 동안 꼼꼼히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평론가는 소설집 말미에 실을 평론을 썼고, 나는 표지에 실을 화가의 그림을 구매했다. 디자이너는 그림을 이렇게도 앉혔다가 저렇게도 앉혔다가 하면서 공을 들였고 제작자는 종이 선택 문제로 나와 몇 번 실랑이를 했다. 작가의 고충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작가 후기 한 줄을 더 산뜻하게 쓰기 위해 몇 번이나 수정을 했고, 책에 실을 사진이 마음에 안 들게 나왔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책 한 권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인쇄소 기사님도 더 고운 색감을 내기 위해 몇 번이나 살필 것이고 책이 망가지지 않도록 잘 포장해 물류창고로 보내줄 것이다. 홍보를 위한 카드뉴스를 만들고 인터넷 서점에 올릴 상세페이지를 디자인하고 보도자료도 만들어야 한다. 아직 할 일이 태산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마음 써서 만든 우리 출판사의 이전 책들이 지금 어딘가에 하릴없이 갇혀 있다. 아마 곧 고물상으로 보내져 폐기 처리될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지난해 큰 도서 총판이 파산했다. 출판사에 책값을 지불하지 않고 책을 가져간 총판이다. 책 유통방식이 그렇다. 돈을 안 준다. 책부터 가져가고 그 책을 전국의 서점으로 보낸 뒤 그 책이 팔리면 그제야 출판사에게 대금을 준다. 아주 오랫동안 그래 왔다. 관행이란다. 게다가 어음으로 준다. 어음이라는 말이 하도 낯설어 출판 햇병아리던 나는 이게 뭔가, 한참을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 총판은 파산했고 출판사들은 돈을 받을 길이 없어졌다. 얼마 전 파산한 총판의 채권단 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책을 돌려줄 테니 돈을 달란다. 으응? 그거 우리 책인데? 왜 돈을 달라는 거지? 알고 보니 파산을 하게 되면 그 책은 총판의 재산이 된단다. 그게 법이란다. "헐! 대박 사건!"이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책을 찾아가지 않으면 채권단은 그 책들을 경매에 부치게 되는데, 도서 유통업자에게 책들이 넘어갈 경우 현재 도서 시장의 질서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고물상에 경매를 부칠 수밖에 없단다. 그러니 이제 우리 책들은 고스란히 폐기될 예정이다. 왜 돈을 들여서라도 책을 찾아오지 않냐고? 그 책은 이미 창고에서 오래 묵었다. 조금이라도 묵은 책들은 서점에 갈 수가 없다. 가봐야 바로 반품 행이다. 팔 수 없는 책을 물류창고에 넣어놓으면 고스란히 또 달마다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 우리로선 별수 없다. 얼마나 애지중지 만든 건데, 백색 종이를 쓸지 미색 종이를 쓸지도 며칠 내내 고민하며 만든 건데. 가름끈 색깔 하나도 온갖 변덕 부려가며 선택했던 건데.

그런데 이번엔 업계 3위의 서점이 도산했다. 급한 마음에 책을 찾으러 간 출판사 대표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서점은 혼란을 우려해 경찰을 부르고 결국 서점을 폐쇄했고, 서점의 책이 쌓여 있던 물류창고도 문을 걸어 잠갔다. 총판 부도 사태와 다르지 않게 마무리가 될 것이다. 돈도 받아본 적 없는 우리 책들은 또 파지가 되려나. 앞으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또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총판이나 서점이 파산하면 아, 우리는 또 돈을 못 받겠구나. 얼마 전 도서를 보관하는 한 물류창고에 불이 나 책들이 모두 탔는데 출판사들은 하나도 보상받지 못했다. 화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화재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물류창고 대표를 욕했지만 알고 보니 책은 불에 타기 쉬운 물건이라 아예 보험 가입이 안 된단다. 대한민국 도서 물류창고들은 다 화재보험 따위 없었던 거다. 그러니 앞으로 물류창고에 불이 나 책이 다 타버려도 출판사들은 또 참아야 한다. 방법이 없으니까. 참 이상한데, 그게 현실이란다. 그래도 꾸역꾸역 책을 또 만들고 있는 내가 제일 이상하지만.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