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들은 항해 기간 중 필요한 식료품 등 각종 물자와 선원들을 부두에서 싣거나 태우게 됩니다. 간단한 선박 수리와 인원 교대도 이때 이뤄지죠. 입항을 아직 못했는데, 물자를 긴급하게 채우거나 선원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요. 간단한 고장이 났는데, 부품을 챙기지 못했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요긴한 역할을 하는 배가 바로 '통선(通船)'입니다.
■ 역사·문학 속 통선
통선은 시대에 따라 이름과 역할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오래전부터 육지와 육지에서 멀지 않은 바다 위 선박을 이어주는 구실을 해왔습니다.
개항기 선교사이자 배재학당 설립자인 헤니 거하드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1858~1902)도 인천에 발을 내딛기 위해서 통선을 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출판부가 아펜젤러의 일기와 보고서 등을 토대로 펴낸 '아펜젤러-한국에 온 첫 선교사'는 개항 당시 인천항의 모습을 상세히 담고 있습니다. 아펜젤러는 1885년 4월 5일 'S.Maru호는 제물포항에 닻을 내렸다. 거룻배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중략) 아내와 나는 거룻배를 탔다. 상륙하는 데 약 1시간이 걸렸다. 썰물로 물이 빠져서 제물포항으로부터 기선은 1.5마일쯤 뒤에 정박해 있기 때문이다"라고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펜젤러는 당시 통선 역할을 한 '거룻배'를 타고 인천에 상륙한 겁니다.
김탁환과 이원태가 쓴 소설 '아편전쟁'에서도 통선의 존재가 묘사됩니다. '인천은 수심이 얕고 아직 부두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 상선이 곧바로 바닷가에 닿지 못한다오. 바닥이 평평한 짐배가 나가서 상선에 붙소. 승객과 상품을 짐배에 옮겨 싣는 게요.'
통선은 바다 위 선박과 부두를 오가는 배라는 점에서 부두시설과 연관이 깊습니다. 개항기만 해도 인천항(당시 제물포항)에는 제대로 된 부두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통선은 사람뿐만 아니라 화물을 나르는 데도 활용됐습니다.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시설이 만들어지면서 화물을 나르는 기능은 없어졌지만, 간단한 물건과 사람을 실어나르는 기능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 신도시 개발과 통선
인천항에 선박이 몰려들어 교통 체증이 가장 심했던 때는 1990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때 체선율은 48.2%에 달했습니다. 100척의 선박 중 48척 정도가 12시간 이상 기다려야 인천항에 입행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평균 체선 시간이 70시간 정도로, 길게는 1주일 이상을 바다에서 대기해야 했다고 합니다.
당시 체선이 심했던 건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과 연관이 깊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200만가구 건설사업으로 시멘트 등 건설 자재들이 대거 인천항으로 수입됐습니다. 고양 일산, 성남 분당, 안양 평촌, 군포 산본, 부천 중동 등 5대 신도시가 조성됐고, 인천에선 선학동과 동춘동 일대 연수지구가 개발됐습니다.
이들 개발사업에 필요한 시멘트를 실은 선박들이 인천항으로 몰렸고, 인천항의 체선율을 끌어올린 겁니다. 통선을 필요로 하는 선박들은 그만큼 많았죠.
■ 통선, 쓰임 없어지진 않을 것
인천 남항, 북항, 신항 조성으로 인천항의 체선율이 낮아지면서 통선의 활동은 위축됐습니다. 지금은 돌핀 부두에 배를 고정시키기 위한 줄 작업과 선원의 출입국 수속을 위해 선박 대리점 직원을 배에 옮겨주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선원들이 입항할 상황이 안 될 경우, 선원 가족들이 통선을 이용해 배에 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인천항에서 20년 정도 통선업을 하고 있는 최모(64)씨는 "가족들이 통선을 타고 선박에 있는 식구를 만나러 가는 길엔 기분이 좋은 표정인데, 나올 때는 표정이 어둡다"며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괜히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통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없어지진 않겠지만, 통선을 찾는 빈도가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그럼에도 통선은 '365일' '24시간' '풀가동'을 원칙으로, 1시간 안에 출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에 따르면 인천항엔 5개 통선 업체가 등록돼 현재 10척의 통선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도 선원과 선박의 안전 등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통선의 지속적인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