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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시절 '타임(TIME)' 한번 껴보지 않은 대학생이 드물었다. 대학마다 타임 동아리가 있었다. 영어를 배우는 교재이자, 세계와 소통하는 창이었고, 가끔은 지적 허세를 과시하는 소품이기도 했다.

1923년 창간한 미국 최대 시사주간지 타임은 시사 인물을 선정하는 안목이 탁월하다.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인물' 커버스토리는 가장 영향력 있었던 뉴스메이커로 한 해를 정리하는 권위를 인정받는다. 1982년엔 올해의 인물 대신 '올해의 기계'로 가정용 컴퓨터를 선정하는 파격으로 화제가 됐다. 1999년에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 화제가 되자 2004년부터는 해마다 '타임 100(Time 100)'을 발표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문재인 대통령, 봉준호 감독, BTS(방탄소년단),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명단에 올랐다.

'나무위키'가 정리해놓은 타임지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역대 한국인 주인공들을 일별하면 한국 현대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승만에서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박세리, 안정환, 박지성, 장동건, 황우석 등이 표지인물로 영욕의 현대사를 대변한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도 대를 이어 타임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문 대통령이 최신판 타임지 커버스토리 주인공으로 표지를 장식했다. 표지 사진 제목이 '마지막 제안(Final Offer)'이다. "저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평화는 매우 깨지기 쉬운 평화다." 대통령은 타임 인터뷰를 통해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대화 재개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을 '정직하고 열정적'인 지도자로 칭찬한 것도 의도적인 립서비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타임지 기자는 문 대통령의 대북 유화책을 '망상'이라고 비판하는 미국 고위층의 입장도 함께 전했다. 국민의힘은 6·25를 앞두고 김정은을 칭송했다고 격분한다. 윤희숙 의원은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타임지를 청와대가 홍보한다'며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마지막 제안'에 담긴 대통령의 진심은 이해한다. 그러나 임기에 몰린 문 대통령의 시간과 세습집권자 김정은의 시간은 차원이 다르다. 협상은 늘 서두르는 자가 지게 마련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