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없는 42만명 미래 생각할 여유도 없어
文정부 무임승차 부추기는 정당 여겨질 뿐
토론배틀, 옳다는것 입증 못하면 모두 패배자

통합이 아니라 공존을 강조한 그의 당대표 수락 연설은 신선했다. 샐러드볼을 사례로 들면서 '다움'의 강박을 버리자는 주장이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다문화주의 또한 후한 점수를 받을만했다. 기존의 보수와는 결이 다른 합리적 보수의 등장이 다른 정당의 개혁을 촉발하고 한국 정치의 낡은 지평까지 혁신하기를 희망해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준석 대표가 내세운 보수의 '공정' 가치이다. 그가 당대표 취임 후 추진한 '미스터트롯' 방식의 대변인 선발과정은 '공정' 가치의 후광이 되고 있다. '미스터트롯'은 영웅신화처럼 무명의 인재가 최고 가수로 되어가는 서사 구조를 하고 있는 드라마틱한 공개 오디션이다. 대중음악 스타들의 심사, 현장 관객의 투표, 시청자들의 문자투표까지 최고가수가 탄생하는 흥미진진한 과정은 코로나19 위기로 지친 국민들에게 최고의 위안이었다.
그러나 이 오디션 프로의 즐거운 경연과 개인이 경험하는 경쟁을 동일시하는 것은 환각이다. 전자가 게임을 모방한 즐거운 놀이라면 후자는 삶의 정글에서 갑질과 차별을 감내하며 생존을 위해 싸우는 사투이기 때문이다.
단거리 경주에서 출발선이 다르면 어지간해선 순위가 바뀌지 않듯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경기의 승패도 결정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 '실력양성론'도 그랬다. 독립을 위해서는 독립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진화론의 적자생존론에 기초한 것이었다. 조선의 식민지화는 독립 역량이 부족한 탓이라는 책임론과 역량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일본제국을 식민지국가가 추월할 수 없으니 독립은 불가능하다는 자가당착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공정'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 진보의 공정은 개인이 처한 누적된 불평등을 보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보수는 개인의 현재 능력이 보상의 기준이라고 본다. 공정을 둘러싼 간극은 우리 헌법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헌법 119조 제1항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밝히고 제2항은 부의 편중과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한 국가의 개입 여지를 성문화하고 있다.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되 분배 정의 실현과 시장의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한 규제와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이다.
실력우선주의의 급격한 대두는 진보적 공정가치의 무기력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처럼 여겨왔던 경제민주화도 흔들리고 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빈부격차를 조정해야 한다는 경제민주주의 정책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실력주의 사회는 능력이 유일한 척도이며, 힘이 곧 정의인 야생의 정글이며, 무제한의 자유를 부여받은 시장의 지배자는 개인을 무제한의 불확실성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공정경쟁이라는 이름의 주술이 토마스 홉스의 표현처럼 인간이 인간에 대한 늑대가 되기를 주문하고 있지만 그 대응은 쉽지 않다.
청년들이 처한 절망적 현실이 실력주의의 토양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계속 상승하여 10%에 달하고 있으며 한국의 청년고용률은 42%에 불과해 OECD 최저치이다. 42만명의 청년들은 아예 일자리가 없다. 그들은 미래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간신히 얻은 비정규직 직장에서는 갑질과 차별로 좌절하고 만다.
진보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무임승차를 부추기는 정책을 펼치는 정당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 불만과 분노에 편승하여 실력주의라는 낡은 가치를 부활시키는 정치가 사회적 퇴행임에 분명하지만 '토론 배틀'에서 승리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옳다는 것을 입증해내지 못하면 모두 패배자가 된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