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철학의 신기원을 연 소쉬르(1857~1913) 언어학의 핵심은, 의미는 차이에서 발생하며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임의적이라는 것이다. 언어학·기호학·구조주의 등으로 확장한 그의 방법론은 사회구조 분석과 문화 비평 등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소쉬르 언어학의 사회학적 확장판으로 부르디외(1930~2002)를 들 수 있다. 그의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의 골자는 문화적 기호(嗜好)와 취향도 각기 다른 사회적 출신 배경 곧 계급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옷', 패션도 다양한 취향과 계급성을 반영한다. 정장, 연미복, 군경의 제복, 의사의 가운, 연예인들의 화려한 의상 등도 사회문화적 취향과 직업·계급·위계를 나타낸다.
청바지 찢어 입기는 패션의 문화정치, 저항의 문화다. 서부개척 시대에 시작된 노동자의 옷인 청바지는 하위문화다. 그 청바지를 입는 순간, 계급·직업·연령·성적 차이 등이 모두 무화(無化)하는데 그마저도 찢어 입음으로써 패션문화의 위계를 부정하고 저항한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패션 정치가 화제다. 그는 원피스를 입거나 멜빵바지를 입고 등원하는 것으로 권위·예의·격식 등을 상징하는 국회의 주류문화에 도전한다. 최근에는 등을 노출한 의상을 입고 타투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하였다. 젊은 진보 정치인으로서의 장점과 발랄함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회적 이슈를 생산해내는 정치 감각과 수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류 의원의 행보는 일상의 권위와 억압에 도전하는 미시정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의 이런 행보가 국회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억압적인 사회구조나 인식은 그대로인데 멜빵바지 입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시정치, 패션의 정치는 이벤트성이 강하다. 가령 청바지 찢어 입기는 저항의 문화가 아니라 더 새로울 것 없는 낡은 유행이 됐으며, 심지어 찢어진 기성품 청바지가 판매되는 등 상업문화로 변질된 지 오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이어 최재형 전 감사원장까지 대선에 나서는 상황에서 아직도 진보 정치를 대표하는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진보정치가 미시정치, 패션 정치로만 가면 안 된다. 진보정치의 진보가 종요롭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