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야기를 나눈 한 바지선 선주는 인천대교 쪽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2009년 인천대교 개통식에서 공사 관계자들에게 많은 표창을 줬는데, 바지선 선주는 단 한 명도 상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바지선 없는 해상·해변 공사 현장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만큼의 가치나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했던 기억을 되새겼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바지(Barge)선'입니다. 타이어를 두른 넓은 직사각형 형태의 평평하게 생긴 배를 보신 적이 다들 있으실 텐데요, 이런 배를 바지선이라고 합니다. 주로 근해나 호수, 하천, 운하 등에서 공사 자재 등 화물을 운반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엔진이 없어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요? 바지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혼자선 움직일 수 없는 '바지선'
바지선은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엔진이 없어 혼자 힘으로 항행할 수 없습니다. 선박 등록에 관한 법률인 선박법에서는 부선(艀船)이라고 정의합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이동을 위해선 예인선(曳引船)의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바지선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는 예인선이 줄로 끌어 움직이고, 부두나 작업 현장에 붙여야 할 때는 예인선과 홑줄로 묶어서 단단히 고정해 움직입니다. 바지선과 예인선은 한몸이나 마찬가지라 서로의 호흡이 맞아야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배를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작업 현장에 바지선을 가까이 붙이기 위해 예인선에 단단히 고정해 움직이는 것을 업계에선 '차고 다닌다'고 표현하는데, 예인선의 예(曳)자와 인(引)자 모두 '끈다'는 의미이지만, 끌지 않고 차고 다니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바지선의 몸집이 예인선에 비해 보통 크기 때문에 바지선이 예인선을 차고 다니는 형상인데, 예인선이 바지선을 차고 다닌다는 표현도 흥미롭네요.
예인선이 바지선을 차면 예인선 브리지에서 바지선 앞 상황이 어떤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인선 항해사는 바지선으로 건너가 현장을 보고 무전기로 상황을 브리지에 전달해 주면서 바지선을 움직인다고 합니다.
바지선은 준설토나 바다에서 채취한 모래를 운반하고, 교량·항만 건설 현장의 장비와 자재를 나르기도 합니다. 화물차나 철도로 수송하기 힘든 대형 화물의 단거리 수송에도 이용됩니다. 인천예부선협회에 따르면 바지선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분류되는데, 우선 4개의 앵커(닻)가 달려 바다 위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는 '세팅부선'이 있습니다. 또 갑판에 1.5m 정도의 벽이 설치돼 화물이 떨어지지 않는 '코밍부선', 갑판에 벽이 없고 평평한 '평부선', 바닥이 움푹 파여 화물을 더 많이 실을 수 있는 '홀드바지' 등이 있습니다.
외항 하역, 해상 공사 등 '활약'
인천항 주변을 무대로 활동하던 바지선은 갑문 준공(1974년) 이전부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당시에는 외항 묘박지에서 바지선을 활용한 하역 작업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형 화물선들이 인천항에 배를 붙이지 못해 바다 한가운데서 바지선에 화물을 내렸던 것이죠.인천항에 갑문이 생기고 부두시설이 좋아지면서 바지선 일감은 급격히 줄었는데, 교량이나 부두시설 확충 등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면서 다른 일거리가 생겼습니다. 남항과 북항 등 항만 조성공사와 영종대교, 인천대교 등 교량 공사가 오랜 기간에 걸쳐 추진되면서 바지선이 일할 수 있게 된 겁니다. 2015년 개장한 인천 신항 공사 과정에서 바지선은 5천800t 규모의 케이슨 40여 개를 운반하기도 했습니다. 케이슨은 육상에서 제작한 안벽 구조물인데, 바다에서 직접 구조물을 쌓아올리기 어려운 경우 육상에서 케이슨을 제작해 바다에 옮겨 넣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됩니다.
바지선이 없는 항만 공사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게 항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엔진은 없어도 그만큼 화물 적재가 자유로워 바지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죠.
맡겨진 소임 묵묵히 수행... '신뢰'
바지선은 해상이나 해변 공사 현장에서 주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무동력선이라는 이유로 배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선박법 시행규칙이 개정된 1997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적선으로 등록하지 못하고 건설 장비로 취급됐다고 하네요. 선박법 시행규칙 개정 등에 인천의 바지선 선주들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전언입니다.
최근엔 대규모 해상 공사 등이 자취를 감춰 바지선 선주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준설토를 옮기는 바지선 선주들은 일거리가 그럭저럭 있는 편이라고 합니다. 인천항의 항로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준설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바지선은 육상으로 치면 화물차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해상 공사 등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장비이지만, 주목받는 경우는 드문데요. 그래도 맡겨진 소임을 묵묵히 다하는 모습에 믿음이 갑니다. 지금까지 바다의 조연, 바지선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