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시마는 일본 성공·몰락을 두고
17년사이 전혀 상반된 책을 펴냈다
이유는 경제 아닌 정치적무능 분석
주변국 멸시·혐오 글로벌 변화 둔감
韓규제 또 제 발등 찍어… 日만 피해


임병식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일본 경제가 잘 나가던 1982년. 모리시마 미치오는 '왜 일본은 성공하였는가'를 출간했다. 1999년 그는 다시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를 썼다. 불과 17년 만에 전혀 상반된 책을 쓴 것이다. 모리시마 교수는 위기는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무능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교육과 정신적 황폐에서 비롯된 정치적 무능과 상상력 빈곤 때문에 일본 경제가 침몰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일본 학자 요시미 슌야가 쓴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도 같은 맥락이다. 요지는 이렇다. 일본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지시에 순응하는 국민성은 '따라잡기(catch-up)' 산업화 시대에는 장점이었지만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단점이 됐다. 결국 물을 머금으면 쉽게 무너지는 '액상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버블 붕괴와 동일본 대지진, 원전사고는 일본 몰락에 결정타가 됐다.

일본은 한때 미국과 함께 G2였다. 공신력 있는 국제 경쟁력지표(스위스IMD 세계경쟁력 연감)에서 1989년 1위를 차지했다. 30년 만인 2020년 조사에서는 63개국 가운데 34위로 추락했다. 역대 최저이자 한국(23위)과 말레이시아(27위), 타이(29위)보다 뒤다. 다른 지표도 마찬가지다. 1989년 시가총액 상위 세계 20대 기업에 일본은 14개사나 포함됐다. 2020년에는 하나도 없다. 도요타 36위가 일본 기업 가운데 최고 순위다.

일본 몰락은 정치적 무능에 있다. 주변국에 대한 멸시와 혐오, 글로벌 변화에 둔감한 정치적 빈곤이다.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도 연장선상에 있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는 대신 오만했다. 2019년 7월1일 기습적으로 '수출규제'를 선포해 경제전쟁을 촉발했다. 외교 문제로 비화할 게 빤한데 외무성에도 알리지 않았다. 경제산업성이 주도한 수출규제는 결과적으로 제 발등을 찍었다. 수출규제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도발이었다. 우리 정부는 대응에 나섰고, 국민들도 일본 제품 불매와 일본 여행 가지 않기에 동참했다. 지난 2년 동안 양국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사실상 정부 차원 외교는 단절됐고 민간 교류도 빠르게 위축됐다. 일본산 자동차와 맥주, 의류는 한국시장에서 곤두박질쳤고 아직도 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때 1천만명에 달했던 양국 관광객도 10%대로 쪼그라들었다. 일본 소도시는 발길이 뚝 끊겼다. 수출규제는 한국기업에게는 약이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불화수소 대일 수입액은 2018년 6천686만 달러(약 750억원)에서 지난해 938만 달러로 2년 동안 86%가량 줄었다. 이 가운데 일본산 비중은 2019년 32.2%에서 12.8%로 19.4%포인트 낮아졌다. 우리 기업이 수입 선을 다변화하고 자체 기술을 확보한 때문이다.

산자부는 1일 '소재 부품 장비 경쟁력 강화 2년 성과' 자료에서 "100대 핵심 품목에서 대일 의존도는 최근 2년 사이 31.4%에서 24.9%로 줄었다. 특히 소재부품 장비산업부문 일본 의존도는 16.8%에서 15.9%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역설적으로 수출규제는 일본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지만 한국 기업은 오히려 단단해지는 기회가 됐다.

아마 전쟁 상황이었다면 일본은 패망했다. 책임을 물어야 하건만 일본 국민들은 조용하다.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도 일본 군부는 오판과 광기로 무모한 전쟁을 도발했다.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고, 도쿄 대공습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죽은 뒤에야 항복했다. 그런데도 1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처벌은커녕 총리에까지 올랐다. 분노하지 않는 국민성도 몰락에 단초를 제공했다.

모리시마는 "제아무리 좋은 교육을 통해 관료와 기업인을 육성해도 훌륭한 정치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 사회는 장래가 없다"고 경고했다. 또 "일본 청년은 무기력하다"면서 "노여움이 없고 성취하려는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비관했다. 수출규제 2년, 우리는 어떠해야 하나. 국민통합과 경제에 유능한 지도자를 선택하고 불의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불공정에 분노하는 청년세대에게서 희망을 본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