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찰스 킨제이는 미국 교도소 재소자 1만8천명을 인터뷰한 자료를 바탕으로 '남성의 성적 행동(1948년)'과 '여성의 성적 행동(1953년)'을 잇따라 발간했다. 이 두 권의 책이 바로 미국과 전 세계를 강타한 '킨제이 보고서'이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성욕이 있고, 동성애를 한 차례 이상 경험한 남성이 37%에 이른다거나, 기혼 남성의 절반·기혼 여성의 25%가 혼외 정사를 갖고, 여성의 절반은 혼전에 성관계를 갖는다는 등의 연구 결과는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킨제이 보고서로 촉발된 성혁명(sexual revolution)의 기세는 대단했다. 성 관련 담론들이 음지를 벗어나면서 남성 중심의 지배구조에 균열이 생겼고, 성적 자율성이 높아진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와 존엄에 눈을 떴다. 킨제이는 은밀한 침실문화를 막대그래프와 숫자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성을 해방시키고 세상을 바꾼 셈이다. 휴 헤프너가 1953년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실존 인물인 70대 남녀 노인의 성생활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가 논란 끝에 '제한상영가' 등급에서 '18세 이상 관람가'로 완화돼 개봉(2002년)한지 벌써 20년 가깝게 지났다. 이제는 남성과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으로 선택한 모든 형태의 섹스가 허용되고 존중받는다. 여성에게 혼전 순결을 강조했다가는 '꼰대'로 몰리기 십상이고, 간통죄마저도 사라진 세상이다. 성관계에 적대적인 사회적, 문화적 제약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한국 성인 3명 중 1명(36%)이 지난 1년간 성관계가 없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00년 비슷한 조사에서 11%였던 섹스리스(sexless) 인구의 3배 이상이다. 연세대 연구팀이 서울 지역의 만 19세 이상 남녀 2천182명을 대상으로 한 '2021년 서울 거주자 성생활' 연구결과이다. 여성 응답자의 43%와 남성 응답자의 29%가 1년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한다. 또 지난 1년간 성관계를 가진 20대 남성은 58%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낮았다고 한다.
연구팀은 섹스리스(sexless)의 배경으로 여성의 지위향상, 경제적 환경 등을 꼽았다. 모든 형태의 섹스가 허용된 세상에 정작 섹스 없는 인구의 증가는 우리 사회의 적신호일 수 있다. 심층적이고 전면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