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大英帝國)은 17세기 들어 신대륙과 동양으로 진출,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 19세기엔 캐나다, 인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지배국 범위를 넓혔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다. 1차 대전 이후 일부 피지배국이,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대부분 국가가 독립했다.
식민지를 벗어났어도 신생국 대부분은 영국연방국으로 남았다. 6대륙을 망라한 53개국으로, 영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는 주권국이다.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캐나다는 영국과 국왕이 같은 군주제를 유지한다. 인도·가나는 공화제를 채택하는 등 통치체제가 각기 다르다. 이 때문에 반영 진영에서는 이름만 남은 껍데기 연방이라 조롱한다. 지배층이 본토 출신이라 일반 국민들 뜻과는 괴리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
연방국가 중 캐나다는 장자(長子)로 대접받는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국왕이고, 수상이 내각을 이끈다. 프랑스·미국과 치열하게 싸워 쟁취한 대가이기에 영국의 애정도 각별하다. 중국보다 넓은 영토와 풍부한 지하자원도 매력적이다. 외교무대에서 영국 입장에 번번이 손을 드는 든든한 우군이다.
캐나다 위니펙에서 '원주민 인종청소 규탄 시위대'가 지난주 주의회 앞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빅토리아 여왕(1837~1901) 동상을 쓰러뜨렸다고 외신이 전했다. 캐나다 옛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어린이 유해 1천여 구가 발견된 사건의 불똥이 번진 것이다. 시위대는 빅토리아 여왕 동상을 발로 차고 주변에서 춤을 췄으며, 붉은 페인트로 동상에 손자국을 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동상엔 백인 우월주의 단체를 뜻하는 'KKK'를 적기도 했다. 여왕이 캐나다 국가 수반인 것은 식민지배 잔재이며, 백인 중심 역사의 상징이라는 게 시위대 주장이다.
캐나다 정부가 '문화적 집단 학살'로 규정한 이번 사건의 너울이 허리케인으로 진화 중이다. 총리가 사과했고, 희생자 추모를 위해 9월30일을 법정 공휴일로 정했다. 장자의 돌출 반항에 영국도 깜짝 놀란 기색이다. 영연방 균열의 전조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면 아래인 캐나다 퀘벡주 독립운동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진실의 가장 친한 친구는 시간'이란 말이 있다.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죗값은 치러야 마땅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