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1469~1527)는 권력은 함께 나눌 수 없으며, 도덕과는 별개라 했다. 전근대 유교사회에서는 정치와 도덕이 분리돼 있지 않았지만, 삼권분립과 민주주의가 제도화한 근대에 와서 정치와 권력, 도덕은 서로 다른 영역이 됐다. 권력은 오직 국가를 운영하고 정권 재창출에만 골몰해 있다. 이를 위해서라면 권력은 때로 불의와 부도덕도 불사한다.
권위적 독재시대에는 반공과 색깔론을 무기로 야당을 억누르고 국민을 통제해 왔다. 그 이후에는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따질 것 없이 상대의 도덕적 결함이나 불법, 탈법 사례를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다 정권을 유지하고 재창출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을 갖다 붙여도 국민들은 그게 다 정치쇼요, 정치공세라는 것을 안다. 이를 보고 혹 통쾌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나 침묵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지치고 짜증이 난다. 정치에 대한 환멸의 지수만을 높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유튜브 등을 활용한 마타도어, 페이크 뉴스, 비방전이 판을 친다.
어쩌면 대선주자 1, 2위가 처가와 본인 문제로 법적 구설에 올랐다. 높은 지지율이 이들의 정치적 역량과 정책, 도덕성 등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사법기관과 경찰의 조사 시점과 발표가 공교롭다. 이런 사태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TV 채널을 돌리고, 신문을 덮고, 클릭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인가.
옛날 선비들처럼 화양계곡이나 곡운구곡이나 두문동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지금은 어찌해야 하는가. 매슈 아놀드(1822~1888) 같은 19세기 영국 비평가들이 제기한 사심(私心)없음, 초연함으로 번역되는 'disinterestedness'의 태도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만 보고 무조건 묻지 마 지지를 할 게 아니라 사태의 본질이 뭔지 냉정하게 지켜보고 또 유력주자들이 대변하는 가치와 정책, 역량과 도덕성 등을 모두 꼼꼼하게 따져보자. 그리고 표로 심판하자. 마키아벨리는 이런 유연한 대처와 정치적 태도를 가리켜 비르투(virtu)라 했다. 우리의 초연함과 비르투야말로 공작정치와 마타도어와 비방전의 악무한을 끊어내고 한국정치를 살리는 길이다. 이제 정말 국민이 현명하고 무서운 줄 보여줘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