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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1월 어느 날 휴전선 비무장지대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체제 우월성과 대남 비방을 쉴새 없이 쏟아내던 북한군 확성기가 잠잠하더니 장송곡이 울려 퍼졌다. 전방 북한군 영내에 일제히 반기(조기)가 올랐다는 목격담이 돌았다. 김일성 주석 사망설은 급속하게 번졌고, 신문은 호외를 발행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주석은 열차를 타고 가다 총격을 받았다. 군부 중심의 심각한 권력투쟁이 진행 중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군부 쿠데타로 변란이 일어났고, 암살 주범은 중국으로 도주해 각국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소환되고 있다는 설이 돌았다.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고, 남북 관계에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전쟁설이 제기됐다. 남한은 물론 일본과 서방세계를 놀라게 한 사망설은 오래가지 않았다. 망자(亡者)가 몽골 사절단을 맞으려 대중이 운집한 평양공항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김 주석은 1994년 7월 공식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 당시에도 호외가 발행됐고, 피살설 등 추측이 난무했으나 사실무근이었다.

지난 7일 증권가에선 김정은이 '뇌출혈로 열흘째 의식 불명에 빠졌고' '수술 후 사망했으며' '평양이 봉쇄됐다'는 사설 정보지(지라시)가 퍼졌다. 일부 매체는 익명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에서 쿠데타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국정원은 곧바로 근거 없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지난달 말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정상적으로 통치 활동을 한다고 부연했다.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27주기를 맞아 노동당 간부들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고 북한 매체가 8일 보도했다. 증권가에 돌았던 '김정은이 뇌출혈로 의식 불명에 빠지고 수술 후 사망했다'는 내용은 낭설이 됐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변 이상은 중대 사안이다. 한반도는 물론 국제정세에 메가톤급 영향을 미친다. 김일성 부자에 김정은 위원장까지, 건강 이상과 군부 반란설이 대를 잇는다. 죄다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판명되지만 그때마다 증시가 요동치는 등 소동이 반복된다.

정보가 넘쳐나고 위성으로 차량 번호를 감지하는 세상인데도 북한 사정엔 더듬이 신세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김일성 사망설의 발원지와 기획자는 밝혀진 게 없다. 엊그제, 맑은 하늘 천둥 치는 소리에 여의도 증권가가 출렁였다. 북한 인민들이 들으면 실소(失笑)할 일이다. 언제까지 이럴 건가.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