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 단지와 철도역이 있는 평범한 도시의 주거 지역이지만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와 어선, 어구 등 어촌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각종 수산물과 이를 팔려는 상인, 사려는 손님들의 흥정 소리가 이어지는 정겹고,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도심 속 포구'라고 불리는 수도권 대표 어시장, 소래포구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가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그래픽 박성현기자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 되고 싶은 '경인이'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소래포구입니다. 소래포구는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수도권 명소로 손꼽힙니다.
특히 꽃게가 잡히는 5~6월과 김장철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렸죠.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상황이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소래어촌계에 등록된 어선들도 주변 개발 등 여파로 3년 전에 비해 100여 척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예전보다 위축되는 모습인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데요, 소래포구와 관련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90년대 소래포구. /경인일보 DB
현대사 아픔 녹아있는 소래포구
소래포구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이 켜켜이 배어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제의 수탈, 한국전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소래포구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로 전해집니다. 일제는 이 일대에서 생산된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1930년대 수원에서 소래를 거쳐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수인선 철도를 건설했습니다. 건설 현장과 염전에서 일할 일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띄운 나룻배가 정박한 곳이 지금의 소래포구로 전해집니다. 이때만 해도 어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1983년 소래포구 모습. 1980년대 초 소래포구에는 제대로 된 선착장이 없어 배를 갯벌 위에 세워 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소래역사관 제공
어업이 시작된 건 한국전쟁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실향민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실향민들이 작은 목선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기 시작한 겁니다.
1963년 실향민 등으로 구성된 어민들은 소래어촌계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등록 어선은 28척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작은 어촌에 불과해 잡아온 생선은 포구 주변에서 바로 팔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수인선 등 철도를 이용해 인천항과 서울 등지로 가져가 팔았다고 하네요.
어민들은 포구에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전봇대를 직접 세웠고, 또 꼬불꼬불한 물길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나무를 갯벌에 직접 박아 뱃길을 표시하는 등 쉽지 않은 어촌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80년대까지 소래포구는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물길을 표시하는 시설이 없어 어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어민들은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고, 이는 소래포구 발전의 바탕이 됐다. 사진은 어민들이 전신주를 세우고, 물길을 표시하기 위해 대나무를 갯벌에 박고 있는 모습. /전익수씨 제공
소래포구에서 작업 중인 어민 모습. /경인일보DB
80년대부터 활성화… 새우젓·꽃게 인기
'서해 경기해안의 미항', '관광객이 부쩍 늘어 비좁은 포구는 원색의 인파로 흥청거리는 곳', '싱싱한 해물이 많이 나 각종 공해에 찌든 도시민들도 마음 놓고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수도권 어항'. 1981년 한 신문이 소래포구에 대해 소개한 내용입니다.
소래포구는 어민이 직접 잡은 수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래포구 주 어종으로 새우젓을 꼽는 분이 많습니다. 김장철에 한 번은 거쳐 가야 할 필수 코스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도 대형 냉장시설이 드물어서 온도가 낮은 부평동굴, 광명동굴 등에서 새우젓을 보관했다고 하네요. 소래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싱싱한 꽃게도 빼놓을 수 없겠죠.
2017년 화재 직후 소래포구 어시장. /경인일보DB
화재 많았던 어시장.. 현대식 건물로 변신
소래포구 어시장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건 지난해 12월입니다. 지하 1층~지상 2층, 연면적 4천600㎡ 규모의 건물엔 각종 점포 300여 개가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육아카페, 족욕장, 식당, 포토존 등 고객 편의시설도 있어 시장을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죠. 소래포구 어시장이 이런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 건 화재 때문입니다.
2017년 3월 큰불로 좌판 240여 개, 상점 20개가 소실됐습니다. 당시 화재로 300여 명의 상인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게 돼 고초가 많았는데, 3년 9개월여 만에 새 건물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20년 새로 개장한 소래포구 어시장. /경인일보DB
소래포구 어시장은 2013년 2월, 2010년 1월 등에도 화재가 발생해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는데요. 소방시설 등 방재시스템이 구축된 새 건물이 생긴 만큼,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는 없길 바랄 뿐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어시장 상인들 사이에선 "주말이 평일 같고, 평일엔 아예 사람이 없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어 상인들의 걱정이 더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2017년 화재 전 소래포구. /경인일보DB
조업을 마치고 소래포구로 돌아오는 어선들. /경인일보DB
개발 영향으로 줄어드는 어선들
소래어촌계에 등록된 어선은 현재 148척 정도 된다고 합니다. 등록 어선이 가장 많았던 2008년 347척 이후 지속해서 줄고 있는 건데요, 2018년엔 그나마 256척 정도였는데 이보다도 100척 이상 감소한 숫자네요. 소래 주변의 각종 개발사업 영향으로 보상을 받고 폐업하는 어민들이 늘어나면서 등록 어선 숫자도 함께 줄고 있다는 게 소래어촌계 설명입니다.
소래포구 인근 해돋이 공원 꽃게 조형물. /경인일보DB
소래포구 어민 절반 이하는 다른 지역에서 어업을 하다 개발의 영향으로 옮겨온 분들이라고 합니다. 시흥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어업을 하지 못하게 된 시흥 어민들, 인천항 갑문 준공으로 만석·화수부두 쪽에서 옮겨 온 어민들이 대표적입니다. 이젠 소래포구도 비슷한 상황이 돼 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소래포구 새우타워. /경인일보DB
소래포구 주변엔 얼마 전 '새우타워' 전망대가 개장했습니다. 높이 21m의 이 타워는 소래포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돼 전망대에서 소래 앞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픈 역사와 서민들의 삶을 간직한 소래포구가 앞으로 더욱 사랑받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 경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