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신장위구르의 화염산엔 '여의봉'이라는 애칭의 온도계가 있는데, 지난 5일 지표면 온도 77℃를 기록했다. 손오공이 철선공주의 파초선을 훔쳐와 불길을 잡았던 바로 그 화염산이다. 지금은 고전과 자연이 절묘하게 조합된 관광지가 됐다. 서유기의 서사와 화염산 열기를 체험하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단다.
열돔(heat dome)에 갇힌 미국과 캐나다가 장작불로 달군 온돌방처럼 쩔쩔 끓고 있다. 화염산의 낭만은 눈곱만큼도 없다. 연일 40~50℃를 넘는 폭염에 수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10억개의 어패류가 그대로 조개찜이 된 것은 물론 태평양 연안 해양생물 집단폐사도 잇따르고 있단다. 마른하늘에 잦은 벼락으로 산불이 속출하면서 마을이 사라졌고, 소방관들이 희생당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의 세상) 소설의 삶을 살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는 참담하고, '기후재앙의 서막이 열렸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는 섬뜩하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당장 다음 주부터 한반도도 열섬에 갇힌다는 기상예보다.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형성한 열돔으로 발생한 2018년 폭염과 복사판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2018년 폭염은 모든 기상관측기록을 갈아치웠다. 서울 39.6℃, 강원 홍천 41.0℃는 역대 최고기온이었고, 전국 평균 폭염일수 26.1일은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는 1994년의 기록을 경신했다. 온열질환자가 4천명을 넘었고 5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철로가 휘어졌고 아스팔트가 갈라졌다. 에어컨 가동으로 가정용 전기요금 폭탄이 예상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전기요금을 할인하고 나섰다.
올해 폭염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 상황과 겹쳐 오는 바람에 걱정이 크다. 어제 신규 확진자가 1천600명대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비수도권 지역 방역단계도 상향조정됐다. 폭염은 방역에 악재다. 지난해 의료진 등 방역현장 종사자들을 괴롭힌 건 바이러스보다 더위였다. 폭염은 노령 확진자의 회복도 방해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의 생계도 걱정이고, 쪽방촌 독거노인들의 건강도 미리 챙겨야 한다. 코로나 대유행과 손잡고 온 폭염이다.
에어컨은 현대판 파초선이다. 올해엔 가정뿐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들도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할 처지이다. 코로나 대유행과 손잡고 올 폭염, 정부나 국민이나 단단히 마음먹고 대비해야겠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