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이 도를 넘는 막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양아치' '돌림빵' 같은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시정잡배들의 비속어가 난무하는가 하면 '약장수' '비루먹은 강아지' '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 등 정치권에서 쉽게 하기 어려운 폄훼성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냥 무식한 놈이 용감하고, 양심 없는 놈이 뻔뻔하다"는 원색적인 '욕설'도 거침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가 말의 예술이라고 하는 데, 폐부를 찌르며 마구 저주하듯 퍼붓는 막말을 듣고 있노라면 얄밉기 짝이 없습니다. 역대 선거보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 수위권 후보의 사생활, 즉 여배우 스캔들에, 후보 부인의 호전 과거에 관해 확인되지 않은 불편한(?)진실 공방은 그렇다 치고 품위를 지켜야 할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을 넘고 있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서로 빈정 상하는 감정 섞인 막말을 하다 보면 본선에 들어가면 더 심해질 터. 국가 미래를 담은 정책은 검증도 못 하고 혼탁 선거로 가기에 십상이지요. 그렇게 되면 국민의 눈과 귀를 잠시 가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들이 그리 어리석지 않습니다.
대선 주자들의 발언으로는 이 지사의 '약장수' 발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에서 경선 연기 주장이 한창 뜨거웠던 지난달 15일 이 지사는 초선의원 모임(더민초)과 경쟁 주자들의 경선 연기론에 대해 "약장수들이 가짜 약을 팔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약을 팔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소년 공 출신으로 인생 신화를 쓴 이 지사의 발언을 상대 진영이 그냥 넘어갈 수 없겠지요. 이낙연 전 대표 측근 오영훈 의원은 "과도한 표현"이라며 "자제해야 한다"면서 출신 성분을 폄훼하려는 뉘앙스를 풍겼지요. 감정을 건드리기 딱 좋은 소재지요.
'도덕경' 구절에 "多言數窮 不如守中(다언삭궁 불여수중)이라는 말이 있지요. 자고로 모든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는데 정치인은 말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의회 경험이 없는 이 지사는 집중되는 '여배우 스캔들'에 대한 질문에 "제가 바지라도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역공을 펴 주위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한 후보는 정색하면서 "'바지 발언'으로 가 버리는 이런 일이 본선에서 있으면 폭망각"이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지요.
경쟁자들이 벌떼처럼 공격하지 않을 수 없는 발언이지요. 정세균 전 총리 측은 즉각 반발했고, 논평까지 나왔습니다. 김성수 미디어홍보본부장은 "이재명 후보 측의 언어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며 "'바지' 논란을 후보가 사과한 지 얼마 안 됐다고, 캠프의 최고위급 인사가 집단폭행이나 성범죄를 일컫는 비속어를 써서 다른 대선후보들을 공격하느냐"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충성 경쟁인지 몰라도 과잉 반응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지사의 수행실장을 맡은 김남국 의원도 만만찮은 '설화'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번에는 '비루먹은 강아지'라는 표현을 썼다고 상대 진영의 역공을 받기도 했습니다. 서로 주고받기식으로 막말을 서로 얄밉게 해가며 흥분된 모습을 숨기지 못했지요.
김 의원과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 간의 설화는 말싸움 그 자체였지요.
김 최고위원이 야권 지지자들에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으로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며 '역선택 논란'을 일으킨 게 발단이 됐습니다. 김 의원은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김 최고위원을 겨냥해 "'비루먹은 강아지' 꼴. 태연한 척 뻔뻔하게 이야기했지만, 겁먹고 잔뜩 쫄아 있다"고 비꼬았습니다. "그냥 무식한 놈이 용감하고, 양심 없는 놈이 뻔뻔하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도 했지요.
김 최고위원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요. 즉시 맞불을 놓았는데 "제가 이준석 대표의 공직 선거 출마 자격시험을 반대한 이유가 바로 이런 분 때문"이라며 "못된 재주가 많아 시험제도로는 걸러낼 수 없다. 정신감정을 제대로 해서 솎아내지 않는 한, 자기복제를 반복해 서식처를 늘려갈 것"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심지어 김 최고위원은 "이재명 지사가 그렇게 욕을 잘하시니 그 밑에서 가방 들고 다니는 분도 그러는 것 아닌가"라고 비수를 꽂았습니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느낌입니다.
벌써 이재명 지사 측도 국밥에서 다시 사이다로 가는 게 아니냐는 관전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지사 측이 지난 14일 대대적인 전면전 모드로 전환했거든요. '국밥' 기조를 내세워 방어에 주력하다 경쟁자들의 공격 수위가 한도를 넘자 정면 승부로 나선 것입니다.
2위 주자인 이 전 대표는 토론회를 거치며 안정감에 힘입어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래서인지 1위 주자를 맹추격하기 위해 이 지사의 부인인 김혜경 씨를 겨냥, 가족도 검증대에 올려야 한다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족 얘기가 나오자 이 지사 측은 이 전 대표 측근의 '옵티머스 사태' 연루 의혹도 들추며 "(그 사람은) 전남지사 경선 때 당원 명부에 가짜 당원을 만들어 시정을 받은 분이자 핵심 측근"이라며 "사실은 그런 부분에 대해 먼저 소명하셔야 될 입장인 데 뜬금없이 아무 관계도 없는 우리 가족을 걸고넘어지니까 좀 당황스럽다"고 역공을 폈습니다.
홍 의원이 심심찮게 이 지사의 쌍욕 발언과 기본소득을 거론하며 '양아치' '무상 연애' 등 험한 말을 아끼지 않았거든요. 국민의힘에서는 홍 의원의 거침 없는 말이 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있다면서도 "왜 이재명에게는 공격하지 않느냐"며 이재명 견제에 나서라는 주문이 SNS를 통해 흘러 다니지요.
두 사람의 삿대질(?)을 조만간 볼 것이라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예감입니다. 홍 의원은 이 지사의 형수 욕설에 대해 '양아치'라는 표현을 이미 썼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어쭙잖은 책 한 권 읽고 선지자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자극을 하곤 했지요. 그러면서 여배우 스캔들에 대해선 '무상 연애'라며 이 지사의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 등 이른바 무상 시리즈를 폠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홍 의원이 같은 당 '윤희숙 의원의 대선 출마 유력' 기사가 공유된 의원 단체 채팅방(단톡방)에서 "숭어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는 메시지를 남겼다가 삭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요. 최근 국민의힘으로 복당한 홍 의원은 이날 당 소속 의원 전체가 모인 단톡방에 초대된 후, 마침 윤희숙 의원의 '대선 경선 출마선언 유력' 기사가 공유되자 '망둥어' 발언을 올렸지요. 즉각 김웅 의원이 '누가 망둥어냐'는 취지로 반문하자 별도의 설명 없이 메시지를 바로 삭제하고 방을 나가 버렸답니다. 실수라고 하지만 많이 멋쩍었으리라 보입니다.
하물며 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정치인의 한 마디는 본인의 이미지를 쌓아 가는 좋은 수단입니다. 조롱으로 쓰는 한 마디가 순간 달콤하게 들려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뒤끝 작렬로 되돌아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부메랑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말 한마디로 시선을 끌고 대중의 일시적 관심을 받을지 모르지만, 막말에 춤을 추는 광대가 돼서는 안 됩니다. 그게 자신의 정치력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더 큰 화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그게 여의도 정치판의 생리입니다. 막말에 춤을 추는 광대가 되지 않기를 거듭 희망해 봅니다.
취재기자 /정의종·김연태 기자 je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