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노동자들 살아가는 '美 레딩'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아닐까
노동시장의 연대 차단 더 강해지고
사회는 더 경직되고… 어쩜 레딩은
군산·울산·부산 영도 어디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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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스웨트'(린 노티지 작, 안경모 연출, 6월 18일~7월 18일, 명동예술극장)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레딩에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레딩은 작은 공업도시이다. 그곳에서 철강 노동자로 살아가는 신시아와 아들 크리스, 트레이시와 아들 제이슨 그리고 바텐더인 스탠과 보조로 일하는 오스카가 주요 인물이다.

레딩에서 철강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에는 일종의 자부심이 있다. "할아버지는 장인이었어. 손을 써서 일하는 사람을 존중했어. 그때는." 전형적인 백인 노동자인 트레이시의 말이다. 레딩에서 삼대에 걸쳐 철강 노동자로 살고 있다. 노동으로 흘리는 땀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흑인인 신시아와도 막역한 사이로 20년 넘게 지내고 있다.

그러던 2000년 어느 날 이들에게 균열이 생긴다. 신시아가 관리직에 뽑히고부터 균열의 골은 커지다가 공장 폐쇄와 파업으로 균열은 극에 달한다. 경기가 좋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균열이 경기가 나빠지자마자 적대적 관계로 벌어진다. 그 균열의 틈새를 폭파하는 방아쇠를 오스카가 당기고 만다. 콜롬비아 출신인 오스카가 임시직으로 공장에 들어간 것이다.

"피켓라인 넘었다며?" 바텐더인 스탠이 오스카를 만류한다. 오스카는 시간당 11달러를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잘만하면 풀타임 자리가 나올지도 모른다며 스탠의 만류를 뿌리친다. 오스카도 절박하다. 그의 아버지는 공장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했지만 노조에서 받아주지 않아 평생 임시직으로 살아야 했다고 항변한다.

피켓라인을 넘는 이야기 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빌리 엘리어트'(2000)가 있다. 이 영화는 발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로 성공하는 전형적인 성장 서사의 이 영화는 가족과 사랑, 그리고 열정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가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장치 중 하나가 바로 피켓라인이다.

1980년 초 영국 북부의 탄광촌 에버링턴이 배경이다. 탄광은 파업 중이다. 탄광 노동자 모두 파업에 참여한 지 오래다. 그만큼 지쳐간다. 빌리네 가족이 얼마나 궁핍한지는 엄마의 유품인 낡은 피아노를 땔감으로 쓰는 장면이 말해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버지는 빌리를 발레학교에 보내기 위해 결단한다. 바로 피켓라인을 넘기로 한 것이다. 금기를 어긴 것이다. 작업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아버지는 창밖에 있는 동지를 마주볼 수 없다. 아버지도 안다. 피켓라인을 넘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왜 모르겠는가. 만류하는 장남에게 아버지는 오열하며 말한다. "미안하다. 빌리에게 기회라도 주자."

피켓라인을 넘은 빌리의 아버지를 공감할 수 있는가. 아마도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감동을 받았다면 아버지의 선택에 공감했을 개연성이 높다. 비록 그 장면에서 불편했을지라도 사후적으로 그 선택을 용인하지 않고는 감동을 받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스카의 경우는 어떠한가. 풀타임 자리를 얻고 노조 신분증을 갈망하는 오스카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가. 아마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를지 모르겠다. 이주 노동자의 위치에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기계를 빼앗긴 노동자의 위치에서 볼 수도 있다. 다만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든 다음의 대사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제이슨과 크리스가 오스카에게 린치를 가하는 장면에서 뒤늦게 울려 퍼진 대사지만 말이다. "우리끼리 싸우게 했어. 회사 새끼들."

레딩의 이야기는 그저 흔한 노동자 서사를 하나 덧붙인 것에 그치는가. 아니면 최근 노동이 처한 역사적인 경로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가. 이 물음은 지금 여기의 우리 사회에서 레딩을 읽어낼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닐까. 이른바 노동 시장에서 우리들은 유연해지고 연대를 가로막는 힘들은 점차 막강해지며 사회는 점점 경직되고 있는 이때에 말이다. 어쩌면 레딩은 군산, 울산, 그리고 부산의 영도 어디쯤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아스팔트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돌고 돌아가는 재봉틀, 그리고 변기를 훔치는 걸레 따위는 어떤가.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