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올림픽 한국 선수단이 지난 17일 선수촌 아파트에 게시했던 '이순신 현수막'을 철거했다.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 현수막 문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장계 '신에게는 아직 배가 열두 척 있나이다'의 패러디였다. 일본 극우 매체가 "불온한 전시(戰時) 메시지"라고 시비를 걸었고, 한 줌도 안 되는 극우 정당원들이 현수막 앞에서 욱일기 시위를 벌였다. 일본 관방장관도 "올림픽 정신" 운운하며 합세했다.
올림픽은 선수단과 국민들이 혼연일체가 되는 국가대항 스포츠행사이다. 올림픽이 평화의 제전인 것은 경쟁의 결과에 상관없이 화합하는 전통 때문이지, 경쟁 자체는 치열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응원과 지지' 없는 국가대표는 없다. '국민의 응원과 지지'를 강조한 한국 선수단의 현수막을, 잔인한 일제의 상징인 욱일기로 모욕한 것이야말로 역사적 적반하장이다. 일본의 이순신 콤플렉스는 가여울 뿐이고.
괘씸한 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다. 일본 편을 들어 "전쟁 메시지는 안 된다"며 현수막 철거를 요구했다. 역사적 맥락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우리 선수단은 욱일기 응원 금지를 조건으로 이를 수용했다고 하는데, IOC가 이 약속을 지킬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올림픽은 최초의 팬데믹 올림픽이자 무관중 올림픽이다. 수백만 명의 인류를 희생시킨 코로나19로 지난해 개최가 취소됐다. 많은 국가들이 올해 개최에도 반대하고 일부 유명 선수들이 대회 보이콧을 선언했지만 IOC와 일본이 개최를 강행했다. 위험을 무릅쓴 참가국과 선수들에게 감지덕지 머리를 조아려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 텃세에 갑질이니 이런 배은망덕이 없다. 최근엔 우리 선수단 급식에 후쿠시마산 대신 우리 식재료 쓴다고 시비라니, 상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이 정도면 죽창가를 외쳐야 당연할 여권과 지지층이 조용하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위행위' 운운한 주한일본공사의 망언에도 전례 없이 차분하다. 일본 방문을 고심하는 문 대통령에 대한 배려라면 놀라운 집단이성이다.
IOC의 안하무인과 일본의 후안무치는 경기력으로 손 봐줄 수밖에 없다. 한국 선수단은 '범 내려 온다'는 새 현수막을 내걸었다. 높이 올라가는 태극기와 함께 범의 포효 같은 애국가가 쉼 없이 일본 하늘에 울려 퍼지기를 응원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