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사람이 누릴 자유를 나무에 비유
자신의 삶의 영역 지키며 살아가
줄기·가지 '향상성'은 중요한 가치
남에 의존하지 않고 가로채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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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다시 정치의 계절이 성큼 다가들었다. 언제인들 이 나라에서 그렇지 않은 때 있었으랴만, 바야흐로 바싹 다가온 정치는 아주 큰 일임에 틀림 없다. 이 나라의 가장 높은 정부 요인을 선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까지 나라가 두어 번은 몸을 이리저리 뒤채일 판이다.

그래서 더욱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한다고, 그보다 더 밑바닥, 더 근본적인 일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잔뜩 긴장하지 않으면 또 그 '정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말 테다.

그렇기는 그러하나, 요즘 이 정치에 오르내리는 말, '자유'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됨을 어찌할 수 없다. 이 말을 가지고 어느 편 드는 정치 대신 삶의 원리에 관해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두 번 정도 열독한 적이 있다. 지금은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다 잊었다. 확실한 인상 하나, 그것은 이 책을 쓴 사람이 '자유'에 관하여 근본적인 성찰을 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자유'는 그러니까 여기에 '이즘'을 붙여 자유주의라고 환원해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하늘이 내리고 땅이 길러주는 사람의 권리와 다름 없다.

이 밀의 논의에서 흥미로운 것 하나, 그는 사람이 누려야 할 이 '자유'라는 것을 나무의 자유에 비유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당장 이렇게 생각할 법하다. 발도 달리지 않은 나무가 무슨 자유가 있으며, 이런 나무를 비유의 매개체로 삼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냐?

그런데 이 비유가 성립할 수 있음을 그는 보여주었던 것 같다. 이제 그의 논의를 필자가 수용한 방식대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나무는 저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신의 삶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간다. 한 나무가 다른 나무를 침해하지 않으니, 이런 타자의 삶의, 그 영역의 인정이야말로 '자유'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나무는 가지의 줄기며 가지를 제가 뻗고 싶은 방향으로 마음대로 뻗으며 살아간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 상상을 펼쳐나갈 수 있음, 이것은 사람의 자유가 구비해야 할 또 중차대한 요건이다. 그리고 이 줄기며 가지는 그렇게 마음대로 뻗으면서도 항상, 궁극적으로는 위쪽을 향하는데, 이 향상성(向上性)이야말로 사람의 자유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다. 사람은 더 높고 더 이상적인 삶을 지향해야 하며 나쁜 쪽, 열악한 쪽에 머물러서도, 그런 상태로 내려가려 해서도 안 된다.

또 나무는 자기 뿌리로 대지가 선사하는 물과 양분을 흡수하고 누구나 누리는 햇빛을 에너지로 바꾸어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음이 아니요, 제 삶의 양식을 스스로 '벌어' 합성하여 누리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자발성(自發性)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남에 의존하지 않고 남의 것을 가로채지 않고 스스로 자기로부터 근거를 삼아 살아갈 수 있음, 이것을 필자는 자유의 큰 요건이라 여긴다.

우연히도, 필자는 올 초에 비평집 하나를 내면서 부지불식간에 이 '자유'에 관해 썼다. 서문을 쓰면서 이렇게 말해 놓은 것이다. "문학의 생명은 자유에 있을 테다. 지배와 차별의 논리를 넘어 자유의 세계를 일구어 내고자 한 한국문학의 선각자들, 선배들께 드리는 깊은 존경과 감사로써 머리말의 마지막 문장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때 필자가 생각한 것은 지나간 다른 민족에 의한 강점기와 긴 독재의 시절이었지만, 여기에 북한 지역에서의 자유 없는 삶도 간과할 수만은 없다.

또한 우리는 언제나 눈 크게 뜨지 않으면 이 자유를 지켜내지 못한다. 자유의 영위는 이 가치를 자각한 사람들 각자가 자신을 둘러싼 각종 제약과 권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나의 농담, 이번 정치 과정에서만큼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을 상황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바로 '나' 자신의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