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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김홍빈이 지난 18일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는 낭보가 타전됐다. 하지만 기쁨을 누릴 순간도 없이, 하산 도중 실종됐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2015년 영원한 등반대장 김홍빈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았다. 김 대장은 그해 3월 30일 경인일보 창간 70주년 기념 로체 원정대를 이끌고 출국했다. 출국 전 인터뷰를 위해 경인일보를 방문했었다. 인사를 나누려 손등만 남은 두 손으로 모자를 벗었다. 열 손가락 전부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 등정에서 잃었다. 하지만 모자도 벗기 힘든 두 손으로 이미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한 거인이었다. 악수 아닌 악수였지만 최고의 악수였다.

아쉽게도 2015 로체 원정대는 베이스캠프에서 만난 네팔 지진으로 무산됐다. 현지에 파견된 경인일보 취재팀은 등반 뉴스 대신 지진참사 속보와 르포를 연달아 보내왔다. 참사에 희생된 등반대와 네팔 국민이 속출했다. 김 대장과 원정대는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벗어났다. 기자는 "순박한 이곳 사람들에게 이런 큰 재앙이 발생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김 대장의 심경도 기사에 담았다. 산 보다 사람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김 대장의 산악인생은 시작도 못한 채 끝날 뻔 했다. 첫 단독 등정인 매킨리에서 손가락을 다 잃었다. 거기서 포기했다면 '김홍빈' 이름 석자는 없었다. 오히려 열 손가락을 잃고 난 후 7대륙 최고봉 등정과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손가락을 바친 매킨리도 올랐고, 지진 때문에 물러선 로체 원정은 그 다음해에 기어코 성공했다.

마침내 마지막 14좌 브로드피크 정상에서 비범한 노력으로 일군 인간승리를 완성한 김 대장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습니다. 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은/ 새로운 손이/ 그렇게 말합니다." 경인일보 인터뷰 기사 첫 문장이다. 김 대장이 2009년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 등정에 도전하며 쓴 글이라 했다. 시련을 이겨낸 거인이 보인다.

어제 조난 지점 800∼900m 아래에서 김 대장의 위성전화 신호가 잡혔다는 보도가 있었다. 거인의 모습 그대로 돌아올 것을 끝까지 믿겠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