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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비법·비결 존재하지 않아
표현수단은 기술보다 열망이 도움
내면을 자세히 살펴봐야하기 때문
모든 글쓰기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
그래서 첫번째 덕목은 '솔직함'이다

사본 -김별아사진
김별아 소설가
강릉 성덕반딧불 작은도서관에 이어 서울 창신동에 자리한 여성역사공유공간 '여담재'에서 진행하고 있는 글쓰기 교실의 이름은 '나를 사랑하는 글쓰기'이다. 주제가 있는 수필, 칼럼, 여행기, 감상문 등 다양한 형식의 에세이를 수강생들이 직접 쓰고 동학(同學)들과 나누는 과정이다. 한 달에 한 번인 수업이지만 글을 쓰는 가운데 미처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경험을 함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첫 시간에는 짐이자 힘, 상처이자 구원인 '가족'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쓴다. 두 번째 수업에는 상처받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돌보는, '이너 차일드(inner child)'를 주제로 한 에세이를 쓴다. 이외에도 시를 읽고 감상문 쓰기, 세상과 나의 관계를 이해하고 주장을 밝히는 칼럼 쓰기, 역사 공간을 방문하고 여행기 쓰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글 쓰기 등이 계획되어 있다. 2시간 남짓의 수업 시간 동안 십여 명의 수강생 중 두세 명이 맡아 쓴 에세이를 나눠 읽고 감상과 비평을 공유한다. 나이, 사는 곳, 살아온 배경 등이 모두 다른 이들이 짧은 글을 통해 풀어낸 이야기는 기대보다 훨씬 길고 깊다. 몇몇은 기억 때문에, 다른 몇몇은 그 기억에 공감하며 울고 웃는다.

수강생들은 '나를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교실 이름 때문에 강의를 신청했다고 털어놓곤 한다.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어 왔다고. 그런데 막상 글을 쓰라고 하니, 그것도 잊었거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괴로웠던 밑바닥의 기억과 마주하라고 길라잡이가 '푸시(push)'를 하니 약간은 '낚인' 기분이 들기도 하나 보다. 빨간 펜을 들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하나하나 '지적질'하는 성질 못된 선생이지만, 그 불만 아닌 불만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사랑이 어떻게 달콤하고 보드랍고 아름답기만 한가? 아프고 슬프고 괴롭다 못해 지긋지긋한 혐오와 환멸까지도 모두, 어쩔 수 없는 '사랑'이 아닌가? 그러니까 '나를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교실 이름은 틀린 것도, 거짓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새롭거나 낯선 방식을 배우고 있는 것뿐!

모두가 글을 읽고 쓰며 살아가지만,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멋진 글을 쓰지 못할까 봐, 거칠게 말해 '쪽 팔릴까 봐' 첫 문장을 쉽게 뱉어내지 못한다. 실로 글쓰기의 비법과 비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유로운 상상과, 꾸준한 습작과,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비밀스런 속삭임이 있을 뿐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인 글쓰기에 재주나 기술보다는 상처와 열망이 힘이 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자세하고도 끈질기게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든 크든,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어느 집이나 장롱 안에는 해골이 있다는 서양 속담처럼, 가족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숨기고 살아온 사람도 많다. 성취든 실패든 과정에서의 후회와 깨달음은 엄연히 존재한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남 보기에 그럴듯한 어른이 되어도, 내면에는 여전히 두렵고 외로운 어린아이가 남아 있다.

모든 글쓰기는 결국 '나'를 말한다.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짓으로 꾸민 공허한 나를 멋진 수사와 휘황한 표현으로 숨길 수 없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글쓰기의 첫 번째 덕목은 솔직함이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에게는 최대한 단문을 쓸 것을 요구한다. 옛사람들의 서간에는 '할 말이 없어 글이 길어졌습니다'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하고픈 말이 명확하다면 중언부언 글이 늘어질 이유가 없다.

'나를 사랑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은 수강생 모두의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면 거짓이겠지만, 최소한 그들의 다리가 튼튼해졌을 거라는 건 자신한다. 첫 시간 휴대폰에 '만보기 앱'을 다운받는 것으로부터 수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한다. 다리를, 몸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마음을 지키기가 날로 힘들어지는 혼란한 세상을 누군가는 그렇게 뚜벅뚜벅 걷고 있다.

/김별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