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항 하역 작업 등엔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계화가 많이 이뤄지긴 했지만,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큰 선박을 부두에 고정하기 위해 굵은 밧줄을 부두에 걸거나 선박 출항을 위해 걸었던 밧줄을 푸는 일은 기계가 할 수 없습니다. 화물을 선박에 싣거나 내리는 일은 크레인이 하지만, 그 크레인은 결국 사람이 조종합니다. 컨테이너에 실리지 않는 자동차 같은 화물은 어떻게 할까요? 사람이 일일이 손수 운전해 선박에 싣거나 부두로 내려야 합니다. 사람은 항만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이 바로 인천항운노동조합입니다.
인천항운노조는 인천항에서 이뤄지는 수출입 화물의 하역 작업을 전담하고 있는데요, 개항 이래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천항과 역사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천항운노조에 대한 이야기,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인천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130여 년 인천항의 역사를 함께한 주역이자, 지금의 인천항을 있게 한 역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 부두 노동자가 처음 나타난 건 개항기라고 합니다. 농촌에서 땅 한 평 없어 빌어먹기도 어려웠던 사람들이 '인천 드림'을 위해 제물포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어부, 소농 등 일시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항으로 항만에 물동량이 많아지면서 상시적 노동이 필요하게 되자 부두로 눈을 돌리는 노동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화주가 짐을 나를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 많았다고 합니다. 변변한 장비 하나 없던 시절 부두 노동자들은 맨몸으로 짐을 날랐습니다. 부두 노동자 특성상 일정하지 않은 작업 시간과 작업량으로 안정적인 노동 공급이 어려워지자 한국인 하역원들은 중구 내동에 '모군청'(募軍廳)이라는 하역 조합을 꾸려 노동자의 취업을 주선했습니다. 이 하역 조합이 항운노조의 시초입니다. 항운노조는 독점적인 노무 공급 체제를 인정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짐이 와르르 하고 부두에 쏟아졌다. 짐에서 떨어지는 먼지며 바람결에 불어오는 먼지가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몸부림 치는 바람에 가라앉지를 못하고 공중에 뿌옇게 떠돌았다. 사람을 달달볶아 죽이고야 말려는 듯한 지독한 볕은 신철의 피부를 벗기는 듯했다.'
강경애(1907~1943) 소설 '인간문제'에 실린 내용인데요, 당시 인천항 부두 노동자들의 상황을 간접적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군수 물자와 수탈 물자를 하역하던 인천의 부두 노동자들은 일제를 상대로 노동 쟁의 활동을 시작한 것이죠. 부두 노동자들은 1926년부터 1936년까지 수차례 파업을 벌였습니다. 일제의 탄압이 있었지만, 이들은 쟁의 과정에서 민족적 차별에 대항하고 일제 제국주의를 비판했다고 합니다.
부두 노동자들은 광복 직후 '인천자유노동조합'을 창설합니다. 당시 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6천여 명이나 됐다고 하네요. 미군정, 한국전쟁, 4·19 혁명 등의 역사적 혼란기에서도 하역 작업을 계속하며 노동조합을 정비하게 됩니다. 운송사업을 중심으로 한 '인천부두노동조합'이 따로 설립되기도 합니다.
이들 노조는 분열과 통합을 되풀이하며 세를 키워나가다가 항만과 운수 분야 노동자들을 통합한 인천항운노조를 1981년 8월 설립합니다. 인천항운노조는 1998년엔 경인항운노조로 명칭을 바꿨다가 2004년 인천항운노조로 다시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엔 '기계'와의 투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1966년 인천항에 지게차와 크레인이 대량 도입되면서 중량 화물 하역 작업이 기계화된 것이죠. 1968년엔 마그넷(자석) 사용으로 고철, 철제류 작업도 기계화됐습니다. 항만 하역의 기계화는 노동조합의 존속을 위협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70년대로 들어서면서 더욱 심화합니다. 1974년 사료 도매업체 대한싸이로주식회사가 인천항에 양곡 전용부두와 진공 흡입식 하역기 2기를 완공했습니다. 당시 인천항 양곡 하역량은 전체 물량의 20~30%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대량 실직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인천항운노조는 근로자에 대한 대책 없는 기계화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노조는 '대한싸이로에서 필요한 노무직은 조합원으로 둘 것', '작업 단계에서 감축한 분야는 보상할 것' 등의 대책을 요구해 관철시켰습니다.
2007년 항운노조 상용화 개편이 있었습니다. 상용화 개편이란 기존 조합 소속 일용직 인력을 하역회사별로 상시 고용하도록 항만 인력 공급 체제를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상용화 개편을 추진했는데 '노조 채용 비리 재발 방지'와 '항만 환경 개선' 등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지난 100여 년간 부두 노동자를 공급해왔던 항운노조의 독점 고용권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렵게 합의에 이르게 됩니다. 2천800여 명에 달했던 전체 조합원 수는 상용화 직후 1천여 명 대로 줄어들게 됩니다. 생계안정자금 등을 지원받고 일을 그만둔 조합원도 많았다고 합니다.

인천항운노조는 인천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조합원 중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후속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백신 접종이 조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합원들의 안녕과 인천항 발전을 위해 더욱 많은 역할을 인천항운노조에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친절한 인천 알림이 경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