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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려면 어림없는 것인데

봐라, 하늘이 하시는 일인 거라.

마당에 내려선 어머니가 합장을 하였습니다

가뭄 끝에 단비 땅을 적시어

땅냄새 물큰하니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봉인을 풀듯 나직한 그림자 적시며 / 생땅 냄새,

푸른 꽃내음이 훅 끼쳐 왔습니다



50억살 먹은 어리고 푸른 꽃이

50억년 찰나 동안 피워올린 몸의 향기



라일락이랄지 감꽃이랄지

이윽한 것들의 향기 속에 배어 있던 흙내음이

어린 어미꽃의 몸냄새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가뭄 끝이었습니다

김선우(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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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으로 유전되어 온 것들의 집합체다. 그만큼 유전한다는 것은 생사와 인과가 서로 끊임없이 어어진다는 말이다. 꽃씨 하나라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생겨나는 것으로 인간과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꽃씨도 세월을 견디면서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결실로서 존재한다. '생땅'에서 뿌리내린다는 건 '하늘이 하시는 일'로 '사람이 하려면 어림없는 것'이다. 이 세계 안에서 대물림 되어 온 생명은 여기서 저기로의 시공간에 대한 이동과 재생이므로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일 뿐이다. 여기서 생존한다는 것은, 이른바 가뭄에도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백일홍처럼 '봉인을 풀듯 나직한 그림자 적시며'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미꽃의 몸냄새'를 잘 기억하기 때문에, 어떠한 팬데믹 상황이 와도 '어리고 푸른 어미꽃'을 남겨 주기 위해 유전하는 데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