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탄생 200주년·조선교구 설정 190주년
솔뫼·해미 등 한국의 영적가치 바티칸 잇고
성직자뿐 아닌 세계 청년 네트워크로 연결
유 대주교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은 큰 의미


이재현 서구청장 증명사진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
얼마 전 낭보를 접했다.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께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됐다는 감격스러운 소식이었다. 성직자성은 전 세계 50만명에 이르는 사제와 부제의 직무 및 생활을 관리 감독하는 곳이다. 신학교를 관장하는 교황청 내 가장 중요한 부서 가운데 하나를 한국인 성직자가 맡게 된 것이다. 대주교께서도 "가장 파격적인 인사라 들었다"고 하셨다.

내 생애 이런 감동의 순간을 또다시 접할 길이 있을까 싶은 마음 반, 별것 아닌 내게도 희망을 주셨던 대주교께서 감당하실 큰일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 반으로 감사 미사가 열리는 충남 당진의 솔뫼성지를 찾았다. 대주교께서는 한국을 떠나기 전 진행된 마지막 미사와 교구장으로 몸담으셨던 대전교구에 보낸 서한을 통해 "저 자신이 성숙한 사제, 친교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을 닮은 사제로 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열정적으로 봉사하고 돌아오겠다는 뜻을 전하셨다.

그동안 내가 봬온 대주교께서는 늘 해맑은 미소를 지닌 어린아이 같은 분이셨다. 미사를 통해 전하신 말씀과 서한에서 약자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하고자 무던히도 애쓰셨다.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혁신적이고 개혁적인 일을 펼치는데도 거리낌이 없으셨다.

대주교께서는 2013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연을 맺으셨고, 이듬해 대주교께서 총책임을 맡은 '아시아 청년대회'에 교황을 초청, 방한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대주교께서 교황청 장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여쭙자 교황께서는 '십자가'라는 답을 주셨다고 한다. 교황께서는 '내가 짊어질 십자가가 무엇일까?' 고민하던 유흥식 대주교의 삶을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거다.

200년 전 한국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탄생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낭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대주교께서도 "김대건 신부에게 매료돼서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또한,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가 계셨고, 인천에 연고를 둔 우리나라 첫 영세자이신 이승훈이 있었다. 그로 인해 외국 선교사를 통해 종교가 퍼진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천주교가 스스로 자리 잡은 세계 유일의 나라로 알려졌다. 당시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주역 가운데 한 분이 바로 이승훈이다.

알고 보면 대한민국이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기까지 여러 종교의 역할은 가히 대단했다. 통합이 절실한 시기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물적 성장에 버금가는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데도 종교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위기 때마다 더 강해지는 놀라운 공동체의 연결고리 역시 종교였다.

이렇게 첫 사제 탄생 200년, 첫 신자 탄생에 이은 조선교구 설정 190주년을 맞은 시점에 유흥식 대주교의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은 큰 의미가 있다.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와 70여 년간 무려 1천여 명에 달하는 천주교인들이 순교를 당한 해미국제성지를 포함해 한국의 영적인 가치들이 바티칸을 넘어 세계와 이어지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방문지인 솔뫼성지와 충남 서산 해미국제성지의 희망 역시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교황청은 해미순교성지를 해미국제성지로 승인하고 선포했다. 교황 방문 후속 사업으로 역사와 문화에 기반을 둔 관광지원사업 역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교황께서 해미 방문 당시 폐막미사 강론에서 '웨이크업(일어나라)'을 외쳤던 것에 착안해 '웨이크업센터'로 불릴 세계청년문화센터 조성이 마무리 중이다. 아시아와 세계의 청년들이 문화를 매개로 연결되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공간이 만들어짐으로써 아시아청년대회 개최지는 솔뫼-해미-바티칸을 잇고 성직자뿐 아니라 전 세계 청년들을 네트워크화할 것이다.

그간 수많은 가치를 발하며 대한민국을 성숙시켰던 놀라운 힘이 대주교를 통해 바티칸과 연결되고 세계에 전해져 대한민국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리라 기대한다. 더불어 사는 친교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길에 동참할 유흥식 대주교께서 펼칠 바티칸의 멋진 날들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힘찬 기도와 응원을 보낸다.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