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가 대한민국 올림픽 1호 금메달을 따냈을 때, 양정모는 곧 대한민국이었다. 동서 냉전의 한복판에서 이제 막 보릿고개를 넘긴 시대 상황에서 국가대표와 국가는 동격이었다. 중계방송 캐스터는 "고국에 계시는 동포여러분…"으로 금메달 낭보를 목청껏 외쳤고, TV 앞의 국민들은 목 놓아 만세를 합창했다. 금메달리스트들의 인생역전 스토리는 하나같이 역경을 이겨낸 위인전이었다. 그래서 은메달, 동메달리스트들은 시상대에서도 태극기를 올리지 못한 죄책감에 웃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의 민주화에 따라 시민과 국가가 분리되고, 2000년대 들어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올림픽을 바라보는 '국뽕'의 시선도 점차 희미해지고, 올림픽을 경기 자체로 즐기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도쿄 올림픽에선 유쾌한 언행으로 국가주의를 벗어던진 신세대 국가대표들로 인해 '격'이 다른 세대의 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유형 200m 결승에서 7위를 기록한 18세 황선우는 세계신기록급 초반 레이스에 대해 "정말 오버 페이스였네"라며 깔깔 웃었다. 17세 양궁 2관왕 김제덕은 개인전 32강에서 무너진 뒤 "개인전은 혼자만의 시합이어서 믿을 게 나 자신밖에 없었는데 그게 약간 부족했다"고 자신의 패배를 냉정하게 인정했다.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여자 에페 단체전 결승은 역대급 올림픽 명장면을 남겼다. 한국의 송세라는 상대 선수가 균형을 잃자 칼을 거두었고, 상대 선수는 장외로 떨어지려는 송세라를 두 팔로 부축했다. 양보할 수 없는 경쟁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성으로 한국의 은메달은 금메달보다 빛났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은 변명하지 않고 자책은 냉정하며, 비겁한 승리 대신 존엄한 패배를 택한다. 이들 앞에 기성세대는 부끄럽다. 공영방송 MBC는 혐오와 조롱 가득한 개막방송으로 전 세계 언론의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정치권의 대선 경선은 혐오 발언으로 얼룩진다. 사법부의 판결을 거부하며 자기만의 진실에 갇힌 공직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올림픽 국가대표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면 양궁대표 오진혁의 승리 선언처럼 지금의 부조리는 "끝"이 될테니. 시름 깊은 국민이 올림픽 때문에 모처럼 웃는다. "코리아 빠이팅"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