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바람 소리에 잠 못 이루고/ 어둑한 깊은 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그 소리에 놀란 선비가 동자에게 물으니,/ 나무 사이에서 나는 소리라 대답한다/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구나/ 어찌하여 온 것인가'. 중국 북송 시대 문인 구양수(1007~1072)의 '추성부(秋聲賦)' 첫머리 일부다. 50줄 넘은 취옹(醉翁)은 문득 가을바람에 스친 인생의 덧없음을 서정적 산문(賦)으로 풀어 명문을 남겼다.
훗날 조선의 화가 김홍도는 인생무상과 쓸쓸한 정서가 묻어나는 취옹의 소회(所懷)를 온전히 화폭에 담아냈다. 화제(화題)는 '별과 달이 환히 빛날 뿐 사방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가을 소리'. 보물 제1393호 추성부도(秋聲賦圖)이다.
달빛 은은한 가을밤, 낙엽 지는 소리에 놀라 바깥을 둘러보는 구양수의 모습에 병들고 외로운 단원 자신을 투영했다는 평이다. 어두운 암색의 마른 가을 산과 초옥을 배경으로 가을밤의 스산한 분위기를 은근하게 드러냈다. 구도와 화법이 추사의 걸작 세한도와 비견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일반에 공개한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와 함께 내걸린 유일한 조선 시대 그림이다. 학계는 단원이 사망하기 직전인 1805년 11월에 그린 마지막 유작으로 추정한다.
안산시가 단원의 유작을 얻으려 총력에 나섰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공문을 보내 정부 차원의 도움을 요청했다. 단원은 고향인 안산에서 어릴 적부터 강세황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림을 배웠다. 이런 연고로 시는 단원조각공원을 조성하고 2003년부터 매년 김홍도 축제를 열고 있다. 2009년 '사슴과 동자'를 시작으로 '화조도', '임수간운도', '대관령', '신광사 가는 길', '여동빈도', '공원춘효도' 등 단원 작품 7점을 소장 중이다.
단원은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 화가로 풍속과 인물, 산수화에 두루 능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아 어진을 그렸고, 현감을 지냈다. 하지만 말년은 참담했다. 병들고 지친 몸에 생활비가 부족해 손을 벌리기도 했다. 예순둘에 숨졌으나 무덤은 전해지지 않는다. 고향 땅 안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단원의 유작을 품으려는 안산시의 노력은 명분이 뚜렷하고 합목적성이다. 문체부가 답할 차례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