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상 단지를 오가는 배달 오토바이를 두고 주민과 배달 노동자 간 갈등(3월31일자 4면 보도="경비원 앞세워 입주민 갑질"…'뿔난' 오토바이 배달노동자)이 계속되면서 배달 노동자들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2일 방문한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에는 지상 통로를 막는 체인과 휠체어 등 개인 이동 수단만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한 곡선 형태의 구조물이 설치돼 있었다. 당초 이 아파트는 택배 차량을 제외한 오토바이와 승용차는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배달 오토바이가 지속해서 지상을 다니자 입주자대표회의는 소음 유발, 교통사고 위험 등을 이유로 아예 통행을 차단하기로 하고 3개월 전 구조물을 설치했다. 송도국제도시의 또 다른 주상복합 아파트는 입구에 오토바이 출입금지 표지판과 함께 지면에 가로 1m가량의 봉 2개를 교차 설치, 오토바이 출입을 막고 있었다.
소음 유발 등 이유로 구조물 세워
지하주차장 '미끌' 오토바이 위험
송도국제도시에는 지상을 공원화하고 모든 주차장을 지하에 배치한 형태로 설계된 아파트가 많아 오토바이의 지상 통행을 금지하는 단지가 많다. 이 경우 배달 노동자들은 지하 주차장을 통해 배달 업무를 하거나 단지 입구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배달에 나서야 한다.
배달 노동자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지상 출입 금지 조치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하 주차장은 오토바이가 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오토바이 특성상 지하주차장은 미끄러워 사고위험이 크고, 비가 오는 날에는 경력이 많은 베테랑 배달 노동자도 넘어져 사고를 당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송도국제도시 지역 배달 노동자 250여명은 지난 3월 아파트 단지 내 소음 유발 방지와 저속 운행, 흡연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안전운전 서약서를 쓰고 관련 공문을 지역 아파트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 아파트는 비가 올 땐 지상 통행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파트는 여전히 지상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배달 노동자와 입주민 사이의 갈등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으면서 물리적 충돌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5일에는 송도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30대 배달 노동자 이모씨가 지상 통행을 막던 관리소장에게 팔이 잡혀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씨는 단지 상가에 입점한 식당에서 배달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지러 갔던 상황이었다. 이튿날에는 이 아파트 음식점에 음식을 가지러 온 20대 배달 노동자 박모씨가 탄 오토바이를 경비원 2명이 앞뒤로 가로막는 일도 있었다. 두 사건 모두 경찰이 출동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관리소장에 잡혀 넘어지는 사고도
노조 "안전 운행 협의·협조 가능"
배달 노동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2일 성명서를 내고 "단지 내 안전 운행 방안에 대해선 얼마든지 협의·협조할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들 편의를 위해 집 앞까지 배달하는 배달 노동자의 단지 내 출입 자체를 통제하고, 지하주차장의 위험 문제를 일방적으로 (배달 노동자에게) 전가해선 갈등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배달 노동자와 주요 배달 대행업체 관계자, 김희철 인천시의회 의원, 기형서·조민경 연수구의회 의원이 참석해 이 같은 문제를 논의하는 간담회를 하기도 했다.
김기범 라이더유니온 인천송도지회 준비위원장은 "배달 노동자들이 입주민의 요청에 따라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다가 사고로 인해 골절 등 큰 부상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며 "주민들과 만나 배달 노동자들이 처한 위험 사항을 설명하고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논의할 기회가 절실하다"고 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