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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스포츠는 인간의 신체가 감당하는 중력과 무게 그리고 속도의 한계를 시험한다. 운동선수들은 강건한 신체로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제 시간과 노력을 다 바친다. 그들은 근육을 단련하고 운동 기량을 가다듬느라 숱한 낮밤을 연습으로 지새운다. 운동선수에게 기량의 양질 전환은 혹독한 연습의 반복과 그 누적에서 나온다. 승리는 피와 땀과 눈물뿐만 아니라 자기 희생을 감당한 자, 즉 자기를 불사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자 그 열매다. 그런 까닭에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극의 순간은 우리를 열광으로 이끈다. 

 

지금 도쿄에서는 2020년 하계올림픽이 한창이다.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올림픽은 한 해나 늦춰졌다. 결국 올림픽은 무관중 경기로 열렸는데, 벌써 '최악의' 올림픽으로 꼽힐 만큼 탈도 말고 뒷말도 많다. 하지만 폭염과 여러 난관 속에서도 각 나라 선수들의 빼어난 기량과 집중력, 담대함, 열정은 감동 그 자체다. TV중계로 올림픽 경기를 관전하며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와 휴먼드라마에 가슴이 더워질 때마다 박수를 치는 것은 무더위마저 잊게 하는 즐거움이다. 젊음의 솟구치는 기개와 단련된 육체가 뿜는 열정과 흥분에 나도 모르게 휩쓸리는 게 싫지 않다.

이동경의 악수 거절… 조구함의 배려·존중
올림픽은 평화·우정 쌓는 '세계인의 축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은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분패했다. 국민의 열망과 기대를 모은 우리 축구대표팀에게는 불운하고 아쉬운 경기였다. 우리나라는 1948년 이래 축구에서 뉴질랜드에 진 적이 없다. 그런 뉴질랜드에 패배한 선수들이 받은 충격과 아픔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경기가 끝난 뒤 뉴질랜드의 크리스 우드 선수가 패배로 어깨가 처진 이동경 선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이동경 선수는 악수를 거절하고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그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혀 방송을 탔다. 아차, 싶었다. 이동경 선수는 나쁜 매너로 구설수에 오르며 비판을 받았다. 이겨야 할 경기에서 진 탓에 실망하고 기분이 나빴겠지만 이동경 선수는 패자의 품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남자 유도 100㎏급의 조구함 선수는 유도에서 첫 은메달을 땄다. 조구함 선수는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4강전에서 포르투갈의 조르지 폰세카 선수와 경기를 치렀다. 경기 시작 1분 만에 상대 선수는 왼손을 움켜쥐고 쩔쩔맸다. 상대 선수가 쥐가 나서 뻣뻣해진 왼손을 풀려고 애쓰는 동안 조구함 선수는 공격을 멈추고 기다렸다. 경기 종료 16초를 남기고 폰세카 선수를 업어치기 기술로 이겼지만 그 승리보다 조구함 선수가 보여준 배려와 존중이 빛난 경기였다. 조구함 선수는 은메달보다 더 값진 매너로 찬사를 받았다. 경기가 끝나자 두 선수는 꼭 끌어안았다. 조구함 선수는 폰세카의 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번 올림픽에서 내가 꼽는 가장 감동을 주는 순간 중 하나다. 최선을 다해 승부를 겨룬 두 선수에게 승자와 패자라는 가름은 뜻 없어 보인다.

승리 집착 볼품없고 야비하며 추하게 보여
매너는 현재의 삶보다 더 나은 삶 표준 제시


올림픽 참가를 위해 4년 혹은 그 이상 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에 메달이라는 포상이 주어진다. 하지만 올림픽은 메달 경쟁이 전부가 아니다. 올림픽은 인종·종교·이념을 넘어서 신체의 강건함과 갈고닦은 기량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 제전이다. 더 나아가 스포츠를 매개로 평화와 우정을 쌓고, 인류 공동의 선을 향한 의지를 다지는 의례이자 세계인이 함께하는 축제이다. 이런 올림픽에서 승리를 한 선수는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의 영예를 드높인다.

승리를 거머쥐려고 최선을 다하는 운동선수들의 역동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매너가 없는 승리에의 집착은 볼품이 없을뿐더러 야비하고 추하다. 운동선수에게 승리를 뒷받침하는 기량의 연마도 중요하지만 매너를 상실한 선수의 승리와 기량의 빛은 바래진다. 매너는 배려와 존중의 시작점이다. 매너는 제 안의 사람됨이 드러나는 기초적 교양이고 예절의 토대이며 인격 그 자체다. 매너는 지금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의 한 표준을 제시한다. 좋은 매너는 항상 참된 삶의 바탕이다. 이것이 올림픽에 참가한 우리 선수들이 더 좋은 매너를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