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녀 13세는 당대의 기방 풍습으로는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십 세 이하, 칠팔 세의 동기가 있었으며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이야기 역시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명나라의 기방 풍속에는 열세 살 기생은 시화라 하여 맛보기 꽃이고, 열네 살 기생은 개화라 하여 활짝 핀 꽃이고, 열다섯 살 기생은 적화라 하여 따낸 꽃이라 불렀다. 그러니 열세 살은 아직 이르다는 말이고 열네 살은 적당하며 열다섯 살은 오히려 때가 지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민중의 고통을 깊이 이해했던 연암 박지원도 안의 현감을 지낼 때 친구 박제가가 자기 고을에 머물게 되자 열세 살 된 기녀를 함께 재운 일도 있었다.
'가련하다 길가의 버드나무…
바람에 날리는 약한 가지가…'
금선의 나이 열세 살에 지었다는 시편들은 기녀의 나이로서는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초기 시로 보이는 '화장을 하며'에는 기녀의 일상이 잘 드러나 있다. '창 앞에 경대를 옮기고/거울 속 고운 얼굴을 조용히 엿보네/봄산 같은 눈썹 연하게 그리니/초승달이 구름 속에서 나왔네//봄바람 불고 비 내리는 날 연지 찍고/다락에 올라 어머니에게 화장을 배우네/두 개의 아름다운 눈썹을 그리니/거울 속에 봄볕이 가득하네'. 화장법을 가르쳐주는 어머니는 요즘 말로 매니저였던 것이다.
'손님을 맞으며'에는 술 취한 사내들의 강권에 못 이겨 시 한 수를 써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사립문에서 늙은 삽살개 짖고/취해서 온 너댓 사람/억지로 시 한구를 지으라 하니/먹꽃이 붓 아래 새로 피었네'. 즉흥적으로 지은 시편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나게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별에 붙여'에는 술손님과 기녀로 새벽까지 자리를 함께하다 헤어지며 지은 시다. '손님과 주인 새벽까지 마음을 논하고/대나무와 달과 솔바람 눈앞에 가득하네/이별 후 일 년 뒤 오늘 같은 날 있으면/문장은 이백의 후예라 홀로 인정 받으리'에는 새벽까지 마음을 논하지만 그녀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정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 있다. 그러나 후일에는 그녀의 시를 알아줄 것이라는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흔들리는 약한 가지라해도
별원의 봄은 감추어 두었다네'
둘은 서로 연모했던 것이 확실
금선의 연모의 대상이었던 벽성객은 해주를 둘러싸고 있는 벽성군에 살고 있는 노시인으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금선은 벽성객의 시를 흠모했고 그의 시를 차운하여 몇 편의 시를 남겼다.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연모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벽성객은 나이 차를 생각해 애써 거리를 둔다.
벽성객은 금선을 누구나 꺾을 수 있는 가련한 길가의 버드나무로 노래한다. '가련하다 길가의 버드나무/꺾이어 행인에게 맡겨졌네/살랑살랑 바람에 날리는 약한 가지가/어찌 능히 따뜻한 봄을 지키리오'. 이 시를 읽은 금산은 다음과 같이 차운하여 노래한다. '큰길가에 있는 수양버들/꺾어가는 사람을 미워하네/비록 바람에 흔들리는 약한 가지라해도/별원의 봄은 감추어 두었다네' 금산은 벽성객을 위해 별원의 봄을 감추어 두었다고 노래한다. 이쯤 되면 금산의 벽성객에 대한 연모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금선의 마지막 화답시는 이렇다. '나이는 이제 십 삼 세/문체와 본바탕이 못나고 약하지만/길가의 버들이라 말하지 마오/원하는 바는 소나무와 대나무의 절개라네/이름이 비록 금선이지만/재주는 감히 소소와 설도에 비길만하네/나이 많다고 어찌 꺼리겠어요/원하는 것은 군자의 배필이 되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