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년간 광주시는 7급 수의사(수의직) 공무원을 충원하려다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어렵게 채용해도 1년이 멀다하고 이직해 나간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각종 가축전염병이 증가하며 전문 수의사 공무원이 현장에선 필수인 상황이지만 적은 인원에 승진도 쉽지 않고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메리트가 떨어지는 직업군이 됐다.
공무원직을 떠나는 수의사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24년간 광주시농업기술센터에 몸담고 한길만 걸어온 이가 있다. 이름만 듣고 남성으로 생각했다가 대면하고 다시 보게 된다는 광주시농업기술센터 농업기술과 도시농업팀 정대이(49) 팀장이 그 주인공이다.
"처음엔 농진청에 입사할 요량으로 거기에 원서를 접수했다. 그런데 지역 농촌지도소에서 몇년간 근무해야 한다고 해 여러 선택지 중 광주를 택했다. 1996년 아무 연고도 없던 광주시와 인연을 맺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잠시 머물 것으로 생각했던 곳이 가정도 꾸리고 삶의 안식처가 되며 제2의 고향이 된 것이다. 부인을 따라 남편도 광주에 정착했는데 남편 역시 수의사로 이 지역에서 1명 뿐인 대동물 전문의로 덕망이 높다.
연고 없었지만 1996년부터 '제2고향'
구연산·유산균 복합제와 탈취제 개발
"팀원들 덕에 상설체험전시관도 개관"
정 팀장은 인터뷰도 한사코 사양할 만큼 본인을 드러내길 꺼린다. 그럼에도 이미 매스컴에 여러 번 오르내리며 집중 조명을 받았다. 때는 2010년, 인천 강화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진정세를 보이지 않자 그는 연구에 들어갔다. 많은 인력과 예산을 동원해 전국적으로 구제역 방역에 나섰지만 차단이 쉽지 않았다.
그는 차량이나 인력을 통제하는 것보다 가축이 생활하는 축사 내부와 사료, 물 등을 처방하는 것이 근원적 해결책으로 판단했고, 이듬해 연구 끝에 '구연산·유산균 복합제'를 개발했다. 덕분에 광주시는 한 마리의 가축도 피해를 보지 않았고 전국적 관심이 쏠렸다. 정 팀장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운이 좋았다. 수의사로서 동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미생물을 연구하면서 이를 접목할 수 있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최근엔 직원들과 유용미생물을 활용한 무독성·무자극성의 반려동물 탈취제도 개발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정 팀장은 "우리 팀원들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게 힘들었을 것이다. 올해 팀원들과 똘똘 뭉쳐 '도시농업 상설체험전시관'을 개관했다. 코로나19로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우리꽃전시관, 작물전시관, 식용허브학습관으로 구성돼 도시농업에 대한 정보는 물론 심신을 치유하는 힐링공간이 될 수 있도록 했다"며 본인보다는 묵묵히 일한 직원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광주/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