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남성이 서넛만 모여도 '군대 시절 시리즈'가 빠지지 않는다. 고된 훈련과 얼차려, PX병과의 짬짜미, 휴일 종교 활동, 헌병대에 끌려간 이런저런 사연이 끝도 없다.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와 어감이 비슷한 '군대스리가' 장면에선 모두가 침이 튀고 데시벨이 높아진다. 어지간한 여자들 수다는 끼어들 틈새가 없다. 오죽하면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남자친구가 군대에서 공을 찬 얘기라 하겠는가.
60대 후반 친척 형님은 요리 솜씨가 쓸만하다. 국과 찌개, 찜과 탕, 탕수육 같은 중화요리를 척척 내놓는다. 식당을 했거나 따로 배운 것도 없는데 말이다. 현역생활 3년을 취사병으로 복무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칼 잡는 그립부터 다른 것 같다. 군기가 세고 몸은 고되나 훈련에서 열외되고, 특식을 몰래 만들어 먹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단다.
연극의 3요소는 배우, 관객, 희곡이다. 군대로 치환하면 군인, 훈련, 그리고 짬밥일 거다. 눈물 젖은 짬밥을 먹어보지 않은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한다. 어머니와 집밥이 그리워 홀로 훌쩍이고, 짜장 짬뽕 통닭은 꿈에서나 영접한다. 소가 무밭을 지나가면 소고기 뭇국이 끓여진다는 우스개가 있다. 식욕이 왕성한 신병 때는 그나마 먹을 만한데 제대일이 가까워지면 냄새도 맡기 싫다고들 한다.
국방부가 조리병(취사병)의 업무부담을 줄이기 위한 로봇 취사병을 연내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로봇활용 표준모델을 개발해 조리병이 가장 힘들어하는 튀김, 볶음, 국·탕, 취사 등에 우선 적용한다고 한다. 첫 시범 대상부대는 육군 논산 신병훈련소가 될 전망이다.
짬밥이 진화하고 있다. 이미 사병 급식에 맥도날드·롯데리아·버거킹·맘스터치 등 시중 햄버거 세트가 제공된다. 신세대 장병 입맛에 맞춘 새로운 메뉴 24개도 추가됐다. 소화력이 떨어지는 병사들을 위한 저 유당 성분 우유도 시범 공급된다. 연어 숭어 셀러리 등 웰빙 식단재료가 포함됐다. 1인 1일 급식비는 8천790원이다.
1950~60년대 입대한 윗세대는 '군에 가면 굶지는 않는다'는 게 위안이었다 한다. 외려 고향 땅 부모 형제가 배곯을까, 가슴이 아렸다. 취사병 위험을 로봇이 대신하고, 유명 브랜드 햄버거가 짬밥 식탁에 오르는 세상이 됐다. 제대 후 풀어낼 사병들의 이야기 보따리도 덩달아 가벼워질 듯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