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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경기, 마한·백제' 전시실 내부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우리에게 마한은 어쩌면 익숙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소국들의 연맹체 형태로 기원전 3세기~2세기 이래 형성되기 시작해 고대국가인 백제가 통합하기 전까지 약 7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곳이다.

경기도박물관에서 10월 31일까지 전시하는 '경기, 마한·백제'전에서는 경기지역 곳곳에서 발견된 마한의 유적·유물을 통해 마한 사회를 재조명해 본다. 토기·철기·금동관·유리구슬 등 경기지역 마한 사회의 역사적 실체를 밝혀줄 50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을 한곳에서 만나볼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다.

이번 전시는 모두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선사시대의 문화를 통해 마한이 성립되는 시기를 보여주며 2부는 마한이 등장해 융성한 시기의 주요 유적과 유물을 소개한다. 3부는 마한의 소국 중 하나였던 백제국이 고대국가인 백제로 성장하면서 기존 지역 세력인 마한의 소국을 어떻게 통합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 김영미 학예사가 꼽은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만한 유물 5개를 소개한다.

경기도박물관, 경기지역 마한 실체 밝혀줄 특별전
500여 점 유물 중 마한시대 화려한 장신구 눈길
경기지역 첫 발견 금동관·금동신발은 통치 매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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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양수리 경질무문토기와 삼각형 덧띠토기 /경기도박물관 제공


■ 양평 양수리, '경질무문토기·삼각형 덧띠토기'

양수리 유적에서는 원삼국시대 주거지와 수혈유구(주거지나 분묘 등 지면을 굴착한 형태 유구)가 조사됐다. 이곳에서는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와 마한 초기에 만들어진 새로운 토기가 함께 발견된다. 자연스럽게 외부로부터 유입된 문화와 결합하며 변화하는 시기임을 알 수 있다. 

특히 6호 수혈유구에서는 경질무문토기와 삼각형 덧띠토기가 거꾸로 겹겹이 포개진 채 출토됐다. 초기 철기시대 대표 유물인 경질무문토기와 새로운 토기문화인 삼각형 덧띠토기가 함께 사용됐다는 것은 기원전 1세기 전반~기원 전후 시기 초기 철기시대 사람들이 마한 시기로 변화하는 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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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운양동에서 출토된 마노제 구슬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 김포 운양동, '마노제 구슬'

운양동 유적은 원삼국시대의 대표적인 흙무지무덤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선(先) 흙무지 조성, 후(後) 매장주체부 굴착'이라는 축조 순서가 밝혀졌다. 흙무지무덤에서 나온 유물을 살펴보면 북방계 금귀걸이, 남아시아계 마노 같은 화려한 장신구류와 토기류, 철기류 등이 함께 출토됐다. 

그중에서도 붉은빛을 띤 마노는 남아시아에서 인도의 다이아몬드 천공기술을 사용해 구멍을 뚫어 만든 것으로 낙랑을 경유해 운양동까지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마한이 원거리 교역을 통해 수입한 고가의 사치품으로 소국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했을 것으로 보는 유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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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마두리에서 출토된 청동 말 모양 허리띠고리 /경기도박물관 제공

■ 평택 마두리, '청동 말 모양 허리띠고리'

마두리 유적에서는 움무덤이 조사됐다. 3기의 무덤 가운데 1호 무덤에서는 목걸이로 추정되는 푸른색 유리구슬과 말 모양 허리띠 고리, 쇠도끼 등이 출토됐다. 

말 모양 허리띠의 경우 천안 청당동, 청주 봉명동, 청원 송대리 등에서도 출토됐는데 분포 범위가 마한의 중심세력인 목지국의 영역과 일치한다. 

당시 진한, 변한, 가야에서는 말을 숭상하며 신성시했는데, 마한과 백제에서도 말머리를 쳐서 제사를 지낸 흔적이 남아있는 만큼 연구가 진행될수록 연관성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마두리에서 나온 말 모양 허리띠 고리와 푸른 유리구슬은 낙랑과의 교역 과정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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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곤지암리에서 출토된 구슬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 광주 곤지암리, '유리구슬'

곤지암리 유적은 중부지역 최대 규모의 마을 유적이다. 마을 북서쪽의 공동묘지인 돌무지무덤이 함께 조사되면서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죽음을 한 유적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는 희귀한 유적으로 불린다. 

돌무지무덤 곳곳에서는 남아시아계 마노와 푸른색·붉은색 유리구슬, 대롱옥 등이 출토됐다. 돌돌 말려 전시된 유리구슬의 경우 유리를 늘려 작게 잘라 내 연결했는데, 이 중 파란색 유리는 융제로 포타시를, 빨간색은 소다를 쓴 것이다. 다른 구슬들처럼 외국의 원료와 기술이 사용돼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마한 사회가 교역에 열려있었고 다른 지역과도 서로 문화를 주고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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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요리에서 출토된 금동관 /경기도박물관 제공

■ 화성 요리, '금동관'

요리 유적은 백제 한성기 최대 규모의 지방 성곽인 길성리 토성에 인접해 있다. 이곳에서는 흙무지무덤이라 불리는 큰 무덤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분포하는 널무덤, 덧널무덤, 독널무덤이 발견됐다. 1호 덧널무덤에서는 매우 정교하게 제작된 금동관과 금동신발이 발견됐다. 특히 금동관은 백제 영역에서 단 9점만 출토된 귀한 유물로 경기지역에서는 요리에서 처음 발견돼 큰 주목을 받았다. 

금동관은 백제 중앙에서 지방의 유력자에게 나누어 주며 포섭하고, 그들을 통해 지방을 평화적이고 유연하게 통치하는 매개체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 지방의 유력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며 중앙세력의 인정을 받는 귀한 물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