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케(1795~1886)는 근대 실증사학을 정립한 독일의 역사학자다. 탁월한 외교술로 유럽을 쥐락펴락했던 오스트리아의 정치가 메테르니히(1773~1859)의 후원으로 그가 구축한 아카이브를 이용하여 사료에 충실한 역사학 방법론을 구현할 수 있었다. 그 랑케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역사학자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로 유명한 투키디데스다. 그리스 도시들 간의 내전인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을 꼼꼼하게 다룬 그 투키디데스가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창안한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 특히 그렇다. 그가 말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기존의 패권국가와 새롭게 부상한 신흥 강대국이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최근 미군의 전격적인 아프가니스탄 철군은 이곳에서의 전쟁이 매우 비효율적이고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은데다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중국 견제에 더 방점을 두겠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우리도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당장 주한미군의 위상과 성격에도 변화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중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 상황 속에서 한반도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경제·남북문제·역내 안정 등을 고려하면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하나 한미동맹도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대선 주자들이다.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안보·외교·경제 등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는 후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작 반문 정서에 편승한 후보이거나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려는 선심성 정책을 내세우거나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후보들에 대해 공세를 펴는 후보들의 네거티브들만 두드러진다.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경제·안보·복지·기후 등 핵심 과제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 국가 미래비전과 사회통합이라는 거대서사를 가진 후보가 누구인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야 한다. 반문 정권교체는 슬로건이지 정치비전도, 정책도 아니다. 또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는 퍼주기 정책도 위험한 일이다. 막연한 정권 계승·교체론을 넘어서, 곡학아세의 정략을 넘어서 올바른 비전과 역량을 가진 후보들을 선택해야겠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