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리대금업자 유대인 샤일록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 시절에나 가능한 로맨틱 코미디이다. 자신을 유대인이라 모욕하는 안토니우스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자 샤일록은 상환계약대로 그의 살 1파운드를 요구한다. 하지만 안토니우스의 절친 바사니오의 아내 포오셔가 재판관으로 위장한 가짜 법정의 판결로 재산도 잃고 기독교로 개종 당하는 패가망신을 당한다.
이 사건을 오늘날 실제 법정에 옮겨 놓으면 권선징악의 대상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 분명하다. 안토니우스는 인종차별과 명예훼손으로 처벌될테고, 포오셔 일당은 법을 농단한 사기죄로 죄다 감방에 갇힐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이 지금 출판됐다면 셰익스피어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개연성을 상실한 막장 작가로 문단과 사회의 지탄을 피하기 힘들테고. 법치와 인권이 자리잡은 지금 '샤일록을 위한 변명'이 넘치는 이유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들어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고, 진(秦)나라가 상앙의 법으로 상앙을 제거하는 법치로 춘추전국을 종결했듯이, 현실의 법은 문학적 상상력과 완전히 분리돼 작동해야 가치가 있다.
대법원의 김경수 전 경남지사 유죄 판결 이후 법원 판결에 불복하는 언어의 성찬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 교수 유죄판결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정경심 재판부를 일제재판관에, 조국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했다. 김남국 의원은 "역사가 오만한 권력자가 계산한대로 흐르지 않는다"며 불면의 소회를 밝혔다. 조국백서의 공동저자인 김민웅 교수는 재판 전 하나님께 "조국 장관의 비통한 눈물을 살펴달라"는 기도문을 올렸다. 범여권 초선 의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재판이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남을 수 없다"고 했다. 법전의 언어로 법원 판결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언어로 역사와 신성을 소환해 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양상이다.
어제 경찰이 법원이 발부한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집행하려다 거부당하자 발걸음을 돌렸다. 법원의 판결에 정치가 문학으로 부정하니, 헌법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흔들린다. 민주주의 법정보다 포오셔의 법정을 더 높이 받드는 사회가 된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 정도면 한명숙의 '양심의 법정'을 신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법원의 위기를 인내하는 대법원장의 묵언은 또 얼마나 답답한지….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