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와 베트남 전쟁은) 코끼리와 호랑이 싸움이 될 거다. 호랑이가 가만히 서 있다면 코끼리가 막강한 엄니로 짓밟을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는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낮에는 밀림에 숨어있고, 밤에는 나타난다. 코끼리의 등에 뛰어올라 가죽을 찢어놓고 다시 어두운 밀림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코끼리는 천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갈 것이다. 이것이 인도차이나 전쟁이 될 것이다'.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호찌민(胡志明) 베트남 주석이 외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공산주의자이며 민족주의자인 호 주석은 미국에 치욕적인 패배를 안겼다. 탄압을 피해 30년간 프랑스·소련·중국을 전전했고, 조국의 독립과 공산 정부 수립을 위해 투쟁했다. 최고지도자가 되고서도 검소한 생활과 탈권위 행보로 신망이 높았다. 소련 정부가 제공한 관용차를 두고 자전거 출퇴근을 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미군이 철수한 지 3개월도 안 된 시점이다. 2001년 시작된 대미 전쟁에서 20년 만에 승리했다. 낮에는 산악 동굴에 숨고, 밤에는 민가에 내려오는 호랑이 전법으로, 미국을 패퇴시킨 두 번째 나라가 됐다. 아프간 대통령은 국민을 버리고 이웃 나라로 도주했다. 현금다발을 챙겼으나 헬기에 다 싣지 못해 공항에 흘렸다고 한다. 부패한 정권, 무너진 군, 무능한 정부의 치욕적인 몰락이다.
45년 전, 패망한 월남 국민은 보트에 올라 해외로 탈출했다. 마지막 미국행 화물선을 타려는 난민들의 절규는 아비규환이었다. 총성과 비명이 요란한 생지옥 카불에서도 같은 장면이 재현됐다. 미군 수송기에 매달린 민간인은 힘에 부쳐 추락사했다. 여성들을 찾아볼 수 없는 시내 거리는 극한의 공포로 가득하다.
탈레반을 이끄는 하이바툴라 아쿤자다(60)는 이슬람 율법학자 출신이다. 공개석상에 모습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으로, 별명은 '믿는 자들의 리더(Leader of the Faithful)'다. 강연 도중 괴한이 그에게 총을 겨눴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4천만 국민이 불안에 떠는 아프간의 앞날엔 혼돈과 공포가 교차한다. 여성 인권은 발밑에도 없는 게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다. 카불에 온 아쿤자다는 '대사면'을 외쳤다. 평화와 공존을 외친 알라신도 극악한 폭력과 학살, 차별을 원치 않을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